2024년 1 2월호 | VOL. 43
특집 | 사랑과 미움의 종말기
001 Diary _ Sara Lorusso
010 So Close When You Look Away _ Ruizhe Hong
024 Julian & Jonathan _ Sarah Mei Herman
036 나의 살던 고향은 _ 이우선
048 맨 돈 크라이 _ 양경준
060 어 플라워 이즈 낫 어 플라워 _ 김시율
072 I’m love you, I’m leaving _ Matt Eich
084 Map to the Star _ Mirko Viglino
098 한 손엔 네 손을, 다른 손엔 강아지풀을 _ 고명재
104 믿음과 침묵 _ 박준
110 왓 엘스, 왓 엘스? _ 박서련
116 어디서도 하지 못한 말 _ 이서수
122 환멸에 지지 않기 _ 김화진
130 Solace _ Sarah Mei Herman
144 Intimacy _ Eiki Mori
154 Together _ Anne Sophie Guillet
166 Love We Leave Behind _ Cody Bratt
178 [연재: 일시 정지] 제인 폰다 그리고 미야자와 리에 _ 서동진
184 [연재: 영화의 장소] 폐허의 프롤레타리아 _ 유운성
198 Soliloquy _ William Zou
212 Bleed _ Faysal Zaman
함께한 계절을 지난 후에
내게 남은 잔상과 흔적들
그 사진책에는 어느 페이지에도 온전한 사진이 없다. 찢기고, 뜯어지고, 잘려지고, 구겨지고, 뚫어지고, 오려내고, 도려내고, 새까맣게 또는 새빨갛게 칠해지고 … 그렇게 사진 속에 누군가의 얼굴은 지워지고, 또 누군가의 얼굴은 남겨졌다. 모두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과 알 수 없는 장소들이 담긴 사진들이지만, 한편으론 왠지 익숙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한 번쯤 이처럼 사진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오려내거나 지운 적이 있지 않을까. 지갑 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바라보기 위해, 또는 이제 바라보는 것조차 역겨워 모든 흔적을 모조리 지우기 위해서.
그 사진책의 제목은 ‘Love & Hate & Other Mysteries’.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사랑과 미움이 듬뿍 담긴 사진들의 애잔한 흔적을 바라보면 제게는 특별한 이름이었던 어떤 사랑과 어떤 미움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사진 한 장, 칼로 조각조각 냈다가 다시 테이프로 이어붙인 이미지에는 짙은 눈화장을 한 금발의 여인이 보인다. 쓰디쓴 이별을 통보하고 매몰차게 돌아선 연인일까? 아니면 어린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젊은 시절의 엄마일까? 끝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그 징글징글한 사랑도, 또 지긋지긋한 미움도 어느새 계절의 끝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그 사진은 알려준다. 스스로 사진 속의 어떤 얼굴과 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가 또 스스로 그 얼굴과 몸을 이어 붙여 다시 간직하려고 했던, 그 마음은 이미 사랑의 한여름도 미움의 한겨울도 지나왔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사랑이든 미움이든 나를 강렬하게 흔들던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 또 언제쯤 사라졌는지 바로바로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 같다. 때로는 자신을 잃어버리게 할 정도의 감정이라면 오히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중에야 희미하게 깨닫게 되기도 한다. 물론 사랑과 미움이 백 미터 달리기처럼 ‘요이 준비 땅’ 해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고, 피니시 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