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쾌한 캐릭터 설정과 공감을 이끄는 탁월한 이야기 구성
어느 깊은 숲속에 서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더지와 사슴벌레가 살고 있었어.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담백하고 명료하게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서로 전혀 모르는 두 등장인물이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비슷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될까?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작가는 ‘우연’이라는 모티브로 그 다음 이야기를 설계합니다. 두 인물이 가진 성격을 고유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요. 두더지는 당근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일하지만 그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도 두더지는 목표를 향해 계획표를 세우며 자신에게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사슴벌레는 유명세가 있는 상담가임에도 실패의 부담에 힘들어하며, 더불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 둘의 같은 마음은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만난 힘든 순간과 겹쳐 자연스럽게 공감을 끌어냅니다.
우연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에서 변화와 의지가 생기고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다.” 50년간 15만 명의 환자를 돌본 정신과전문의 이근후 님의 말입니다. 두 동물 친구의 이야기도 우연은 정해진 틀 안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해 주고, 새로운 시선은 힘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계획표 대로 살아가는 데에 익숙한 많은 이들에게 때로는 우연이 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라는 책의 이야기에 따라가다 보면 마치 사슴벌레의 상담을 받은 듯 내면의 작은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푸른색으로 그린 숲속의 아름다운 밤, 그리고 또 다른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
이소영 작가는 그림책에 상징적인 색채를 정해 표현하길 즐기는데, 이번 책에서는 푸른색에 집중했습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모노프린트로 완성한 푸른 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