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커다란 바위를 만났을 때
이렇게 길을 막으면 어쩌라는 거야?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즐겁다, 봄날이다. 새빨간 산딸기를 따 먹으러 가는 오또도 그렇다. 경쾌하다. 하지만 어느 날 오또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바위. 절망스럽다. 자신 몸의 몇십 배나 되는 바위는 밀어도 꿈쩍 않는다. 원망스럽다. 힘으로 되지 않으니 간절히 기도를 해 보지만 바위는 없어지지 않는다. 속상하다. 오또는 길을 막고 꿈쩍 않는 바위가, 이런 큰 바위를 굴려 보낸 산이 밉기만 하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딸기를 영영 먹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바위를 올라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감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오또의 표정은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삶에서 커다란 바위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큰 바위와 같은 문제를 만난 우리는 오또처럼 절망하고, 다른 대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다 “난 왜 이렇게 못난 거지” 속상해하며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때, ‘잠시’가 필요하다, ‘잠시’는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고르고 문제 상황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오또는 현실을 직시한다. 더 이상 바위를 탓하지 않고 오또가 행동한다. 움직임은 변화다. 오또는 길 한가운데 놓인 바위를 올라간다. 직면이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산은 다르다. 길게 뻗은 담장 밖 세계도 보인다. 새로운 세상이다.
담장을 넘어 “슈우우웅”
회색의 커다란 바위는 오또의 절망스러움과 문제의 크기를 잘 보여 준다. 하지만 바위를 올라가 내려다보는 세상은 시원하다. 시각적이며 입체적이다. 다채로워진 색상과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진 담장의 그림 변화도 흥미롭다. 오또는 바위에만 가로막혔던 것이 아니다. 그전에도 이미 담장 안 오또였다. 담장 안의 오또는 안정된 생활을 했을지언정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없었다.
오또의 길을 가로막은 커다란 바위는 절망이었을까?
삶에서 커다란 바위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