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짓밟을 수 있으면 짓밟아 봐라.
망설이고 있다가는 내가 짓밟을 거야.”
유리 진, 새로운 운명에 마주하다.
‘나’, 유리 진이 사는 그곳을 사람들은 ‘기도원’이라 불렀다. ‘나’ 유리 진은 두 노인 ”필례“, ”수니“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속, 그곳에서 유리 진은 할머니들에게 혈통의 운명에 관해 듣게 된다. 우리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될 마녀의 혈통, 언젠가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
필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낯선 여인을 만나게 된다. 흰 양산 아래에서 치렁치렁 흔들리는 여자의 블론드 머리카락,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는 백색 피부, 투명하고 푸른 눈동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의 엄마인 ”라라“이다. 몇 년 동안 나를 보러 오지 않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에게서는 지독한 향수 냄새가 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기도원을 나와 도시의 낯선 집으로 향한다. 기도원에서 살아갔던 때와 완전히 다른 삶. 처음 가보는 학교, 처음 와보는 도시, 엄마를 애인으로 부르는 공장주, 처음 하는 아르바이트,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낯선 눈길. 엄마는 ‘나’를 단순히 자신의 혈육이라 데려온 게 아니었다. 유리 진은 냉혹하리 만큼 차가운 현실의 운명과 마주하게 되는데...
필례, 살아남기 위해 배에 오르다.
1971년 12월 3일, 진눈깨비가 내리는 속초항에 배가 들어온다. 36개월만에 한국에 돌아온 배 안에는 선원들만 타고 있지 않았다. 몰래 배를 타고 있던 필례, 그리고 그녀의 딸 수니였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소련에서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와야 했던 필례와 수니. 심지어 수니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채로 이 힘겨운 탈출극을 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소금내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국으로 넘어온 모녀. 필례는 정신을 잃은 수니의 뺨을 때리며 말한다. ”살자, 살아보자.“ 다행스럽게도 배의 선장은 인정이 많은 남자였다. 필례와 수니는 선장의 도움으로 한국에 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