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사람은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을까요.
처음 책을 구상하면서 했던 생각입니다. 사람이 사랑에 목을 매는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주고 급기야 자신의 목숨으로도 모자라 남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그런 비겁하면서도 비윤리적인 사랑이야기를 저는 좋아했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밑바닥을 내보이는 등장인물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박현성을 30대 남성에서 열세 살 어린이로, 홍정은을 현성의 애인에서 위탁모로 변경하면서 저의 가슴은 더는 두근거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했던 추해 빠진 사랑은 픽션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이지만, 어린 현성의 삶은 현실에 발을 한 발짝 들여놓기만 해도 어디서든 보게 되니까요.
가련한 비운의 여주인공 홍정은은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슨 짓까지 벌일 수 있을까요, 이 한마디로 시작되었던 글이 어른과 아이, 보호자와 아동의 이야기로 바뀌면서 달리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홍정은이 그렇게 집착하는 사랑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품어도 될 만한 종류의 사랑일까요. 아이를 살리는 사랑일까요, 아닐까요?
애초에 그게 정말 사랑이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