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은 이들의 말
펴내며 _ 잊지 않으려 쓴다
1 | 그렇게 사라져 간다
누구보다 만두에 진심인 사람이 있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녀석의 마음이 왔다
짜장면을 안주로 들면 그가 생각난다
40년 만에 갚은 술값
미디엄 레어가 웰던이 되더라도
어느 악기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너나없이 쓸쓸한 식욕으로 함바집을 찾았다
형은 미움이 없는 사람 같았다
뷔페의 시대가 가고, 친구도 갔다
2 | 차마 삼키기 어려운 것들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이야기
성게 함부로 못 먹겠다, 숨비 소리 들려서
요리사를 위한 요리, 스파게티 알라‘ 기레빠시’
무언가를 입에 대지 못하게 되는 일
사라지는 대폿집 겨우 찾아 아껴 먹는다
그 고생을 해서 일급 제빵사가 되었지만
그대 팔에 불기름 뒤집어쓸지언정
이모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그랬을까
배달의 민족은 온몸이 아프다
소금 안주에 마시는 인생 마지막 술
3 | 추억의 술, 눈물의 밥
굶으며 혀가 자랐다
문간방 여섯 식구 밥솥의 운명
카레 냄새가 나던 일요일에는
종로 우미관 개구멍의 추억
찐개는 맞고 나서 만터우를 먹었다
그날 우리는 두부 두루치기를 먹었다 1
그날 우리는 두부 두루치기를 먹었다 2
우리는 그렇게 가난을 겨뤘다
노을이란 이름이 슬퍼서
매운 돼지곱창에 찬 소주만 마셨다
사라져 가는 것들이 그리워, 잊지 않으려 쓰는 이야기
― 갈수록 냉기가 도는 세상에 목젖까지 차오른 소설 같은 추억들을 꺼내다
어떤 추억은 차마 꺼내기가 두렵다. 유독 마음에 턱하니 걸리는 그리운 사람, 생각만 해도 ‘울컥’해 말을 잇기 어려운 순간들을 당신도 기억 저편에 묻어두지 않았던가. 그와 함께 나누던 밥과 술, 함께 걷던 그날의 온도와 눈앞에 펼쳐지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사이, 그리운 것들은 사라지고 잊힌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삶과 음식의 관계를 정의했던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사라져 가는 추억들을 기억하기 위해 어렵게 꺼낸 이야기들을 엮어 신간 『밥 먹다가, 울컥』으로 독자 곁을 찾아왔다.
대한민국에서 음식과 술, 노포와 추억에 관한 글이라면 박찬일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기자로 시작해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다녀온 그는 2000년대 청담동 일대에 로컬 재료를 메뉴에 올리며 파스타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이고, 와인과 요리, 제철 음식과 절집 밥상까지 가로지르며 최초로 ‘글 쓰는 요리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국내 서점가의 독보적 에세이스트다. 소설가 김중혁이 명명한 것처럼 대단한 ‘국수주의자(짜장에서 냉면까지 국수를 좋아해서 붙은 별칭’로서 면 요리를 다룬 글과 책도 남겼다. 전국의 노포를 취재하며 남긴 책(『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과 『노포의 장사법』과 인터뷰로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기증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더 진하고 깊어진 산문 세계를 보여준 이번 책의 주제는 ‘잊지 않으려 쓰는 이야기,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녀석의 고추장에서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가 웰던이 되더라도 받아야 할 전화,
광풍과도 같던 시대를 등진 친구가 남긴 마지막 편지까지
― 삶의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29편의 에세이, 그 오래된 위로
이 책은 2022년부터 1년간 주간지 《시사IN》의 동명의 칼럼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