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6월의 비바람이 치는 어느 밤, 제네바 호숫가의 별장 ‘빌라 디오다티’에서는 기묘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다섯 명의 참석자 중에는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퍼시 비시 셸리, 그리고 메리 셸리도 있었다. 바이런은 이날 재미삼아 참석자들에게 각자 유령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한다. 정작 제안을 한 바이런은 유령 이야기를 쓰다가 이내 관심을 잃었지만, 그가 무료함을 떨치려는 생각에 가볍게 한 이 제안은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문을 연 작품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다.
메리는 곧장 소설을 쓰는 일에 착수하지 못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며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꾸었고, 그 꿈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불경한 기술을 지닌 창백한 학생이 자기가 한데 조립한 것의 곁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몸을 뻗고 누운 남자의 무시무시한 환영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 어떤 강력한 엔진이 작동하면서 그것이 생명의 징후를 보이며 불안한, 반쯤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으로 흔들렸다.
이 꿈을 모티프로 해서 1818년, 후대에 문학적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대중문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희대의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메리가 쓴 것은 바로 ‘생명 창조’에 관한 소설로, 대담한 발상과 상상력이 넘치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데뷔작이었다.
19세의 여성, 최초의 과학소설을 쓰다
메리 셸리(1797~1851는 무신론자이자 급진적 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의 권리 옹호』 같은 초기 페미니즘 저작을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부터 비범했던 그녀는 성장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메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가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고, 몇 년 후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은 재혼했다. 고드윈의 집에는 아이가 다섯이 있었지만 이 중에서 같은 부모를 가진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을 정도로 이 집의 가정사는 복잡했다. 일찍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교육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