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판 머리말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철학자 헤겔이 ‘대논리학’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지식의 한계 때문에 정작 대철학자의 정확한 속내는 모르겠다. 다만 보이는 것과 그 실질이 다를 때 또는 사물이 엉뚱한 곳에 놓여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 이 문장이 떠오른다. 로스쿨 도입 초기에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변호사 시험의 형식을 보았을 때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야심 차게 시작한 변호사 시험의 ‘형식’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곧 설정한 목적에 따라 적절한 형식으로 수정 · 발전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험법학의 폐해를 외치며 법학‘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법조인 양성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하였지만, 종전 수험법학의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잘못된 형식은 아무 내용 없이 반복되고 있었으며, 지금은 고정되어 버렸다.
형법 이론은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비참하리만큼 소외당했다. 학부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연으로 여러 군데 로스쿨에 출강하였다. 고강도로 압축된 로스쿨의 학사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기본적인 법이론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시험에 출제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지루해하거나 때로는 무신경한 로스쿨 원생을 만날 때에는 곤혹스러웠다. 장래 입법과 법해석에 유용한 기초이론들이 상당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시험에서는 잘 출제되지 않았다. 구체적 사건에서 판례가 없다는 점도 한몫하였다.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조건은 법이론은 무시해도 좋다는 강력한 암시를 주고 있다. 발문의 조건은 “다툼이 없다면 법이론에 따라 해결함”이라는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쉽게 무시되었다. 그나마 판례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학설은 선택형 문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판례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학설은 학술적 유의미성이나 설득력을 불문하고 변호사 시험의 선택형 문제에서는 늘 ‘옳지 않은 문항’으로 취급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