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
“나의 자유가 곧 너의 자유일 필요는 없다./나의 자유, 좋다! 너의 자유, 안 된다!/나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다./너의 자유는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다.”(바르바라 페터스·게오르크 크라이슬러, 《나의 자유, 너의 자유》
《상처받은 자유》는 위 인용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암링거와 나흐트바이의 정의에 따르면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란 사회적 관행을 자신의 자아실현에 대한 부당하고 외부적인 제약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자들은, 이를테면 마스크 착용이나 성인지 감수성적 언어 관습을 자기 계발을 방해하는 봉쇄로 인식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동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를 반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자유 이해는 권위주의와 결합한다.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20세기 비판 이론에서 제시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의 변형으로 간주한다. 구속력 있는 권위적 인물에 의존하는 고전적 권위주의 유형과 달리,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 유형의 사람들은 그 권위를 외부적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자아와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유지상주의적인 새로운 권위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적 관계가 제거된 개인적 자유로 실체화한 ‘권위주의적 자유’인 ‘물화한 자유’에 대해 말한다.
자유를 둘러싼 갈등의 전개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그 갈등은 개인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개입주의적 국가의 복귀를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전통적 우익과 달리 강한 국가가 아니라 약하고 거의 없는 듯한 국가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때때로 경박한 전복 행위와 다른 견해에 대한 광적인 거부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태도를 증명한다. 그들은 취약한 집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본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 언어적으로 무례하고 매우 공격적이다. 그들은 우파적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우파라는 비난은 단호히 거부한다. 개인의 무조건적 자율을 고수하는 이러한 권위주의는 기존의 정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