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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우연, 삶의 여백 (양장
저자 이춘희
출판사 선우미디어
출판일 2024-02-16
정가 15,000원
ISBN 978895658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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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4

1부 쉬엄쉬엄(8편
쉬엄쉬엄 12
꿈, 나의 해석 17
우울한 장마 22
미안,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 27
삶, 하루를 담는 그릇 32
마음이 머무는 자리 37
Are you all right? 43
지구의 기침 소리 48

사유의 능력(12편
허영심의 다른 얼굴 56
기억에 대한 예우 61
우연, 삶의 여백 66
시각적 산문 72
사랑이 비껴가는 길에서 77
사유의 능력 82
꿈속의 사랑 87
잉카의 눈물 92
회상에 대한 소고(小考 97
장쾌한 유린, 소나기 102
저녁노을 108
나를 사로잡는 사람들 113

3부 희망이라는 이정표(10편
희망이라는 이정표 120
보고 싶은 내 강아지들 125
지워진 1순위 130
그들의 모정 136
웅진 가는 길 141
태몽, 그 긍정의 씨앗 146
빗나간 계획 151
아버지와 사각모 156
어머니의 겨울 161
오지 않는 내일 165

4부 짓다 만 집(12편
짓다 만 집 172
시간의 힘과 사용 논리 177
하얀 가면 182
지구야 미안해! 187
솔방울 192
라면 냄비 받침 197
자아의 감옥 202
멍에, 사랑의 다른 이름 207
후줄근한 장갑 212
어깨동무 216
인생 뭐 있나요? 221
미소, 그 경이로운 언어 226
책 속에서

<우연, 삶의 여백>-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상이 어릿해도 흑백 텔레비전을 컬러텔레비전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튼튼한 횡목 같은 무거운 안경을 쓴, 육십을 눈앞에 둔 남자. 무릎이 나온 바지에 성글게 짠 스웨터와 낡은 재킷을 입고도 그것이 텅 빈 우아함과 맞선다고 믿는 느슨한 사람이다. 우연히 만난 그와 함께 나는 리스본의 골목을 오르내리고 폐허가 되어 이따금 박쥐와 들쥐가 돌아다니는 중등학교의 적막 속에서 얼어붙은 밤을 지새웠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그를 배웅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다.
비와 함께 세차게 돌풍이 불어온 날, 고전 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선 한 여인이 강에 몸을 던지려 한다고 생각해 가방과 우산을 던지고 급하게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절망에 빠져 분노와 사랑 사이’에 있는 듯 보인 여자가 허공으로 날려버린 종이에 있던 전화번호를 얼떨결에 그의 이마에 적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불현듯 스며든 낯선 예감이 그것을 지우려던 그의 손을 막는다.

학문의 세계 속에서 건조한 삶을 살아 ‘문두스’로, 더러는 ‘파피루스’로 불려온 그레고리우스. 동화 속에서처럼 속삭이는 듯하던 그녀의 ‘포르투게스’에 끌려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학교를 뒤로한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우연히 헌책방에서 포르투갈어로 된 아마데우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를 얻는다. 사전을 뒤적이고 어학 CD에 귀 기울이며 몇 페이지를 읽고 작가를 찾아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르는 그. 책에 실린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런 문장을 만난다면 누군들 무심히 지나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그를 따라나서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매듯 마음을 다잡았다.

책을 들고 작가의 일생을 쫓는 그레고리우스는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