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1부 Memoir
1 _ 하지만 그런 시대를 살았고, 나는 거기에 있었다: 1980년대, 그때 여기, 영화 | 정성일 |
2 _ 애도할 수 없는 1980년대 | 이효인 |
1980년대 한국영화, 역사의 실험실
1980년, 대학 풍경과 한국영화
1980년대의 영화청년들
1980년대 영화운동의 결절
애도할 수 없는 1980년대
2부 1980년대 한국/영화
총론_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지도 | 정종화 |
3S 우민화 정책
영화정책과 영화계
지속과 변화 사이 | 활기와 위기 사이
영화문화의 변화
위기가 만든 극장의 변화 | 변화를 만든 동인들 | 시네마테크의 초보적 모색
장르 _ 에로물의 시대, 그래도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있었다 | 허남웅 |
에로물과 에로물 사이
신파여 다시 한 번
무덤에서 살아나온 공포
액션 몸으로 울었다
감독들이 종교로 간 까닭은
누구의 존재도 아닌 여성
어른들은 모르는 청춘
수렁에서 건진 사회물
다양성은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미학 _ 1980년대 작가주의 | 김영진 |
1980년대를 조망하며: 혼돈의 용광로 시대
이두용의 거두절미 미학
화면을 잡아채는 활기
이장호와 배창호의 시대
<바보선언>의 예술과 저항 | 대중영화감독에서 예술영화감독으로
미완의 작가주의, 그리고 코리안 뉴웨이브의 가능성
몰개성의 시대를 뚫으려는 의지의 감독들 |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을 향해 | 형식주의자들
임권택이라는 고유명사
장인에서 국민감독으로
배우 _ 어둠 속에서 역동하다 | 김혜선 |
1980년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 미남스타 이영하
1970년대 트로이카와 김지미의 묵직한 동행
1980년대 중반 신 트로이카의 등장: 이보희·원미경·이미숙
에로의 범람 속에서: 나영희·안소영·이대근·마흥식
틀에 갇히지 않는 당당함: 이혜영·강수연
1980년대가 발견한 청춘스타: 박중훈·최재성
독립영화 _ 1980년대 비제도권 영화의 풍경 | 유운성
‘애마’부터 ‘달마’까지 코리안 뉴웨이브의 출발
흔히 1980년대 한국영화는 ‘촌스럽다’거나 ‘저질이다’, ‘에로영화밖에 없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지나친 진지함과 우울, 폭력성은 당시 영화인들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들과 맞닿아 있다. 정치적 민주화를 가로막는 독재권력의 감시 속에 충무로의 기획 제작 관행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감독들의 새롭고 활기찬 재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한국영화는 여전히 외화수입권을 따기 위한 구색 맞추기용 생산물의 성격이 강했고, 많은 영화들이 프로덕션의 낙후성과 부실한 완성도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는 ‘애마’부터 ‘달마’까지 에로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하고, 이장호 · 배창호 · 박광수 · 장선우 · 이명세 등 새로운 영화운동 정신이 기존 충무로 시스템과 결합한 ‘코리안 뉴웨이브’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영화를 넘어선 80년대 문화 지형도
“옛날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스포츠에만 열광하고 영화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영화감독은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_ <바보선언>(이장호, 1983
이 책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다고 말한다. 바람불어 좋은날, 바보선언, 과부춤,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이장호의 외인구단,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그다음은 배창호이다. 꼬방동네 사람들, 적도의 꽃,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깊고 푸른 밤,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개그맨... 그리고 60년대부터 영화를 찍어 온 임권택은 80년대부터 꽃을 피웠다. 만다라, 안개 마을, 길소뜸,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그리고 1983년 출간된 책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를 꼽는다. 제3세계 영화의 등장, 종속이론, <전함 포템킨> 복제 비디오, 그리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