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침략과 전쟁, 위선과 배신의 세계 근대사와 한국의 고투
1부 전전(戰前의 근대 세계와 한국의 국민국가 수립 운동 21
1장 제국주의 침략과 근대 세계체제의 형성 25
1. 식민지배 방식의 변화: 약탈적 교역에서 산업지배로 25
2. 제국주의의 침략은 정당했다? 서구 시민혁명의 한계 33
2장 19세기, 대륙별로 상반된 식민지 독립과 식민지 창출 39
1. 유럽과 중남미: 프랑스 혁명의 나비효과, 식민지 독립 39
2. 아프리카·중동·동아시아: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창출 45
3장 한·중·일 근대의 엇갈림과 합종연횡의 국제정치학 51
1. 속수무책의 중국과 영·미·일 이해관계의 합치 51
2. 영·미 후원하에 대외 침략에 나선 일본 57
3. 냉철한 국제정세 인식을 막은 조선의 쇄국 정책 62
4장 식민지자본주의와 독자적 자본주의의 갈림길에서 70
1. 개항 후 외국 자본 침투에 따른 유통 및 생산 구조 종속 70
2. 정부, 급진개화파, 동학농민군의 근대화 방략 갈등과 한계 78
3. 정치체제와 경제 정책에 대한 갈등 85
4. 근대국가 수립 실패와 공화제를 향한 새 여정 105
2부 제1차 세계대전, 식민지자본주의 구축과 민족운동의 새 장 117
1장 식민지민까지 동원한 전쟁과 두 개의 민족자결주의 120
1. 열강의 남의 땅따먹기 전쟁, 제1차 세계대전 120
2. 레닌의 정략적 민족자결주의와 윌슨의 선택적 민족자결주의 129
3. 격동의 동아시아, 신해혁명과 일본의 중국 침략 146
2장 식민지자본주의, 산업연관성 결여와 재정·금융 종속 156
1. 한반도 지배와 폭력적 무단통치의 주도자, 일본 육군 156
2. 재정·통화·관세 정책의 식민지성 161
3. 대외 침략과 식민 정책을 위한 특수은행 쌍두마차 171
4. 조선인 자본 통제와 식민지지주제의 정착 180
3장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민주주의·세계평화 지향 195
1. 세계평화와 평등을 지향한 독립운동 195
2. 해외 운동 세력의
‘자유’와 ‘평등’의 근대 이념은 제국주의 탐욕의 가면이었다
─비유럽사회가 만난 ‘근대’의 민낯
전근대의 신분제를 대체한 근대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 ‘선언’은 세계사 시대구분의 기준이 될 만큼 위대한 진보였다. 물론 프랑스 혁명이 “천부인권과 법 앞의 평등”을 강조했을 때, 자유와 평등의 주체는 재산을 소유한 납세자에 한정되었다. 에릭 홉스봄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를 이중혁명(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시대라 칭했지만 이는 당연히 유럽사에만 국한된 이야기였다. 유럽인이 비유럽 사회에 대한 대학살의 문을 연 ‘대항해시대’ 이래, 특히 20세기 세계사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을 거쳐 이루 셀 수 없는 제노사이드로 점철되었다. 즉 서구 근대가 선언한 ‘자유’와 ‘평등’은 인류의 보편적 개념이 결코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특히 비유럽 사회에서는 제국주의의 쌍생아로 기능했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국제법’은 유럽 열강 사이에서만 통용되었다. 유럽 열강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땅을 자기들만의 ‘국제법’으로 ‘무주지(無主地’라 규정하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합의’해서 나눠 먹었다. 또 그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비유럽 세계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되어갔다. 자유와 평등의 시대는 침략과 전쟁, 위선(僞善과 배신의 시대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국제정치학, 노골적 탐익의 합종연횡
─1, 2차 세계대전과 전간기를 아우르는 ‘땅따먹기’와 ‘나눠먹기’ 게임
프랑스는 1825년 아이티 독립을 승인해주는 대가로 1억 5천만 금프랑을 요구했다. 아이티는 20세기 중반까지 그 ‘빚’에 허덕여야 했다. 영국은 중국에 ‘자유로운’ 아편 판매를 강요하는 침략을 자행했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도 동남아 침략에 나섰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유럽 제국주의는 ‘무주지’ 나눠 먹기 점령에 나서면서 새로운 식민지를 창출했다. 베를린 회담은 유럽이 아프리카를 ‘평등하게’ 나눠 먹기 위한 정리였다.
제국주의 시대 끝물에 막차를 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