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제1부 조선후기 공법개혁과 양전 균세론
제1장 조선초 전제개혁과 공법
1절 世宗 貢法의 原理
2절 世宗 貢法의 性格
제2장 주자 경계법 수용과 양전 균세론
1절 朱子 經界法과 朝鮮의 經界論
2절 庚子量田에 나타난 양전 균세론
제2부 조선후기 양전론과 토지소유권의 발달
제3장 1720년 경자양전과 양안의 분화
1절 量案의 작성원리와 특징
2절 量案에서 行審冊깃기로의 분화
제4장 1720년 경자양전과 기주
1절 조선후기 소유권 정비와 양전사업
2절 量案의 기능과 역할
제5장 토지소유권의 발달과 사전 혁파론
1절 반계 유형원의 공전 사전론과 공전제 계보
2절 사전 개념과 사유론의 두 계통
3절 공전 개념과 공전론의 두 계보
4절 반계의 공전제와 토지소유권 개혁
제3부 조선후기 토지개혁론의 계보
제6장 柳馨遠의 公田制와 井田論
1절 공전제 토지개혁론과 分數論
2절 公田制의 收取方式과 均民論
3절 均田均民의 제안과 重民勤國論
제7장 兪集一의 方田法에 나타난 균세균역 절충론
1절 방전법 논의의 始末
2절 方田法의 역사적 성격
3절 方田頃畝法의 과제와 측량술
제8장 다산 정약용의 균산론과 토지 공개념
1절 <목민심서>의 양전 균세론
2절 <경세유표>의 방전법과 어린도설
3절 <경세유표>의 정전제와 여전론
4절 다산의 토지개혁론과 토지공개념
맺음말
저자는 조선후기 토지개혁론의 흐름은 양전법, 방전법, 그리고 정전제 계열의 토지개혁론으로 체계화시켜 검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 계통의 토지개혁론은 현실인식뿐 아니라 역사인식 수준에 있어서도 대단히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었다. 양전사업에 의해 조선말까지 추구되었던 정부측의 양전 균세론은 농자천하지대본의 기본 농정책이었지만, 토지불균과 삼정문란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체제위기를 심화시킬 뿐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보더라도 대단히 체제 보수적인 정책이었으며, 양전 균세론의 형식적 명분론을 앞세운 농민통제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양전사업은 양안을 통한 토지지배와 결부제를 기반으로 한 수세 원리를 정책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의도와는 반대로 정부의 균세론적 수취 원리가 농민의 몰락과정을 촉진시켜 갔다고 할 수 있다. 양전 균세론의 정책적 실현은 결과적으로 농민을 토지에서 축출하는 한편 양반지배층의 대토지소유를 가속화시키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양전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서는 방전법을 시행하는 방법을 통해서만이 농정책에 대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개혁지식인 개혁론의 핵심이다. 특히 양란 이후 토지불균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국가재조 차원에서 토지개혁을 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는데 반계 유형원의 공전법이 그것이다. 그의 토지개혁론은 토지소유의 양극화가 심화되자 사전을 공전으로 환원시켜 농촌사회를 안정시키고 농민에게 항산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가재정을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토지개혁론의 계보는 18세기 유집일의 방전법으로 이어졌는데, 방전법은 획기적인 양전 측량법임과 동시에 균세, 균역을 해결할 수 있는 절충론이었다. 그러나 이런 토지수괄 방법에 대해 대토지소유자들을 비롯하여 아전, 이속배들은 망전법이라 하여 모든 토지를 그물망으로 쓸어 담듯 빠짐없이 토지를 파악한다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다. 19세기 다산 정약용은 양전법과 방전법, 정전법을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