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누가 나의 감추어진 손을 끌어내 줄까
심야 버스
봄날
아직 가만히 놓다
긴 잠깐
금영노래방
어제는 생일이었다
오늘
생각은 끝났습니다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
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적벽, 그 아래서
끝은 없었다
2부 밤의 긴 침묵이 날아다녔다
상사초
일식의 하루
부르지 못할 이름
공모
붉은가슴딱새
셋, 동행
저의 불찰입니다
빈 술병이 쓰러져 우는 시
어두움 너머
나의 70년대식
나의 80년대식
나의 90년대식
3부 짧은 사랑의 기록이라고 해 두자
야간 산행
식물학
물푸레나무
입하
가을의 구도
사과
표해록
노란 선 안으로
패턴으로 기억해
쑥보다 레몬그라스
잉카인들은 고향을 감자라고 불러
심해에서
카슈가르에서 한나절
4부 꾸어야 할 꿈이 너무 많아서
세월
들여다보다
연애 고샅길
1월은 길었다
직선과 사선
스물에서의 한밤
재경향우회
골목 끝에 우리 집이 있는데
4월은
삼거리 버스 정류장
인정하긴 싫겠지만
한낮
해설
어둠의 저편, ‘불빛 불 비늘’의 욕망
―고명철(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눈을 떠 보니 잊고 있었던 나의 어제가 떠올랐다.
어제보다 더 먼 옛날들도 차례로 떠올랐다.
읽고 쓰고 걷고 사랑했던 그 긴 날들이
늘 나와 함께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살아내는 게 그랬다.
지구의 어느 한 곳에서
시간의 어느 한 점에서
2024년 2월
김수목
추천사
“살아내는 모든 게 적벽”(「적벽, 그 아래서」인 세상에서 그는 “외로운 이의 창가를 밝히고 싶”(「심야 버스」어 소박하나 따듯한 시의 등불을 찾아다니는 시인이다. 그 등불을 찾으려 “한때는 비구니가 되어 세상을 떠돌”(「그러고 싶었던 것처럼」거나 스스로 불빛을 만들어 보려 “비공개 지하 수장고에 청춘을 처박아 두고” 살기도 했다. 어두운 밤 전철역 근처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의 힘겨움을 견딜 수 없어 슬픔을 물어 날으는 딱새처럼, “붉은 갈색의 가슴에 혼자”, 타인의 슬픔을 담아 가는 딱새처럼(「붉은가슴딱새」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적당히 거절하며/적절하게 싫은 티도 내면서” “다음 생에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멋지게 살아내고 싶다”(「봄날」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천성적으로 나와 너의 분리가 없어 어쩌면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나의 80년대식」 우리들 속으로 영원히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해라는 말은 심장 속이라는 말과도 같”(「심해에서」아서 그는 분리되지 않은 심해에서 심장을 나누어 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는 “항상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 했던”(「막막함이 나를 살릴 것이다」 우리들에게 자신의 손이 “항상 비어 있”음을 보여 주는 시인이다.
박형준 시인
책 속에서
어둠이 밤새 일렁일 때마다 불 비늘이 되어
외로운 이의 창가를 밝히고 싶었다
심야 버스의 낯선 실내등이 파랗게 질려 간다
어둠을 배경 삼아 더 파랗게 질려 가는 찌든 얼굴들
이마가 창문에 차갑게 닿는다
출렁거리며 어둠이 다가왔다가 물러선다
어둠을 뚫고 먼 인가의 불빛이 다가오다 망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