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
대학생 때 고고학을 전공했던 진주현은 형질인류학 수업을 들은 뒤로 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고된 유학 생활 동안 인류학을 공부했고 때마침 기회가 닿아 미국 국방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저자는 사람 뼈를 감식하고 신원을 밝혀내는 일을 하면 할수록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유가족으로부터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해 듣는 날에는 자신의 업이 타인의 오랜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송환식을 사흘 앞두고 내 블로그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 할아버지를 대한민국과 저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님과 작은아버님께서 감격해 많이 울고 계십니다. 두 분 살아 계실 때 할아버지의 유해라도 찾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벌써 제 나이도 내년에 쉰입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_46~47쪽
2018년 여름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북한에 다녀왔다. 저자는 미국 수송기를 타고 원산갈마국제비행장으로 날아가 감식팀을 지휘했다. 쉰다섯 개의 소관에 든 유해를 빠르게 약식 검증했고, 모두 수송기에 옮겨 실은 후 정해진 시간에 맞춰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이 일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 송환 행사를 주관할 만큼 뜻깊고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그날 들여온 쉰다섯 개의 소관에는 250명의 유해가 담겨 있었다. 저자는 5년여에 걸쳐 여든아홉 명의 미군을 신원확인했고 일흔일곱 구의 한국군 유해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상자를 열어 수천 점의 뼈를 정리하고, 그동안 이루어진 분석 결과를 정리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많은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국전 유해의 경우 한 사람의 뼈가 여러 개의 상자에 나누어져 다른 사람의 뼈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 이런 혼재 유해를 어떻게 분석할지 매뉴얼을 만들었고 새로운 형식의 리포트를 작성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어서 출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