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ART I. 조선 야구 엘리트의 탄생
1. 일제 강점기 야구 독해법: ‘귀족 스포츠’ 또는 ‘일본 스포츠’
2. 고시엔 대회와 조선 엘리트 동화 정책
3. 조선 엘리트의 요람 공립고등보통학교에 야구를 이식한 일본
4. 내선융화의 롤 모델 상업학교의 야구 전통
5. 친일파와 지일파의 문화 자본이 된 야구
6. ‘귀족 학교’ 휘문고보의 고시엔 8강 진출의 비밀
7. ‘기울어진 운동장’의 서글픈 현실
8. 조선 야구 엘리트의 ‘먹고사니즘’
PART II. 해방 공간을 파고든 야구
1. 야큐(やきゅう는 어떻게 베이스볼(baseball이 되었나?
2. ‘학원 야구’의 열기와 야구 명문교의 등장
PART III. 한국 야구의 부스터: 재일 교포 선수와 은행 야구단
1. 재일 교포 학생 야구단 방문 경기에 투영된 정치
2. 북송 사업과 재일 교포 야구 선수
3. 박정희가 1963년 야구 한일전 승리에 기뻐했던 이유
4. 상업고 동문과 은행 야구 팀의 등장
5. 아시아야구대회와 은행 팀에서 빛난 재일 교포 선수들의 공헌
PART IV. 고교 야구 황금 시대
1. 고교 야구는 명문고의 경쟁 무대
2. 공화당은 왜 영호남 친선 야구 대회를 개최했나?
3. 상업고가 만든 야구 도시 군산과 마산
4. 구도(球都 부산과 전파 월경
5. 신문사 주최 고교 야구 대회와 패자 부활전
6. 라디오와 TV를 지배한 고교 야구 중계
PART V. 프로 야구의 원형을 제시한 해외 교포
1. 프로 야구의 초석을 놓은 재미 교포 홍윤희
2. 재벌의 야구 팀 창단을 이끈 재일 교포 신격호
PART VI. 프로 야구 시대
1. 전두환 정권과 야구 민족주의
2. 프로 야구 출범에 영향을 준 청와대 수석들
3. 재벌이 프로 야구에 뛰어든 사연
4. 절정에 오른 야구 지역주의 (feat. 김대중·김영삼·김종필·노태우
5. 해태 타이거즈의 전국 팬덤과 ‘전라도 엑소더스’
6. 한국 문화 엘리트들은 왜 야구를 사랑
·일제 강점기 ‘귀족 스포츠’였던 야구는 어떻게 전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가 됐을까?
·한국 스포츠사의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를 문화사로 풀어낸 역작
·야구 명문교의 ‘학연’과 정치·경제·미디어·문화 엘리트의 결합이 건설한 야구의 나라
야구 애호가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출간됐다. 《야구의 나라》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인 “왜 야구는 축구를 제치고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되었을까?”에 대한 해답이다. 한양대학교에서 스포츠문화사학을 연구하는 이종성 교수는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과정을 추적했다.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데에는 엘리트들의 학연이 절대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명문교의 교기(校技였던 야구는 질시의 대상이었다. 공 하나만 있으면 되는 축구와는 달리 비싼 장비가 필요한 야구는 귀족 스포츠였다. 게다가 일제는 야구를 통해 내선융화를 노리기도 했다. 조선에서도 고시엔 대회 예선을 열었고, 조선인 팀이 선전하면 내선융화의 증거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만큼 야구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엘리트와 귀족을 상징하는 야구는 해방 이후에도 지역 명문교를 상징하는 스포츠가 됐다. 경기고, 경복고, 휘문고, 배재고,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전주고 같은 지역 명문들과 선린상고, 군산상고, 마산상고 같은 상업고등학교, 신일고와 충암고 같은 신흥 명문들까지 지역 명문교들은 야구를 교기로 삼아 경쟁했다. 학창 시절 야구에 열광했던 엘리트들은 모교의 야구를 지원했고, 역시 엘리트들이 장악한 언론계는 야구 대회를 열어 신문 판촉에 열을 올렸다. 1970년대 고교 야구의 흥행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 야구가 출범하는 데에도 엘리트들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미국 유학을 경험한 야구 명문교 출신 엘리트들은 정계와 재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에 뿌리를 둔 축구보다 야구가 한 발 앞서 간 이유였다. 여기에 고교 야구를 통해 발산된 지역주의가 프로 야구에 그대로 이식되면서 야구는 한국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