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후고 그로티우스는 [전쟁과 평화의 법] 서문에서 “정의라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혹 뭔가 정의란 게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일 것이니 자신은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카르네아데스를 소개하고 있다. [반면] 그로티우스는 자신은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득을 돌보는 것이 어리석은 태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태도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바 이것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면 세상에 어리석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묻노니, 자신의 유익함을 게을리하는 것(모르기 때문에 게을리하는 경우와 알면서도 움직여 취하지 않는 경우 모두를 가리킨다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어리석은 것이란 말인가.” (제1장 중에서
“문제를 참되게 판단할 줄 아는 이들이라면 정의로움의 학문과 유익함의 학문, 즉 공공선(publicum bonum에 관한 학문과 사적 선(privatum bonum에 관한 학문 양자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어느 누구도 불행한 자들[을 방치한 채 그들] 사이에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는 형평과 선의 진정한 원천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그러한 샘을 파 본 적도 없고 그 샘물을 마셔 본 적도 없는 것이다.” (제4장 중에서
“우리가 눈을 들어 저 보편적 조화를 우러러본다면 분명 우리 모두는 모두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고 야망과 탐욕에 광분하거나 사치에 무감각해져서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아무런 영혼의 진심도 쏟지 않으며 단지 세상 속에서 충동에 의해서만 행동하니 이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 안에 태어난 벌레와 같아서 경이로운 구조와 이성으로 움직이는 전체 체계에는 무관심하거나 호기심이 없고 단지 자신만을 위해 태어나서 그 귀하디귀한 사지를 마구잡이로 써버리는 것과 같다.” (제6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