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1부 그림식 고을지도, 최고의 비보풍수 이야기
명당의 의미가 변하다
풍수사상, 개혁으로 나타나다
작고 웅장하지 않으면서도 크고 웅장하게 하라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개념, 지기를 만나다
명당은 임금의 무덤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풍수의 명당에 자리 잡은 고을의 읍치는 많지 않았다
최고의 비보풍수, 마음속의 명당을 그리다
이야기 속 그림식 고을지도를 찾아라
2부 풍수점수 빵점 고을, 100점의 명당 고을로 만들어라
풍수점수 빵점의 고을, 의외로 많았다
경상도의 ‘상(尙’ 자가 유래된 상주(尙州를 찾아가다
충청도의 ‘충(忠’ 자가 유래된 충주(忠州를 찾아가다
충청도의 ‘청(淸’ 자가 유래된 청주(淸州를 찾아가다
강원도의 ‘원(原’ 자가 유래된 원주(原州를 찾아가다
전라도의 ‘전(全’ 자가 유래된 전주(全州를 찾아가다
전라도의 ‘라(羅’ 자가 유래된 나주(羅州를 찾아가다
경상도의 ‘경(慶’ 자가 유래된 경주(慶州를 찾아가다
강원도의 ‘강(江’ 자가 유래된 강릉(江陵를 찾아가다
3부 우연히 풍수점수 25~75점이 되다
풍수점수 25~75점의 고을이 가장 흔했다
포천, 풍수점수 25점을 100점으로 끌어올리다
파주, 권율 장군이 주둔한 산성이 우뚝하다
부평, 현실의 비보풍수 알뫼〔造山〕를 만나다
김화, 남북분단이 초래한 슬픈 고을의 읍치를 찾아가다
평창, 비보숲을 만나다
청양, 풍수점수 25점의 읍치를 100점+α로 만들다
음성, 풍수점수 25점의 읍치를 100점+α로 바꾼 고을을 또 만나다
금구, 골짜기를 완전히 지우고 비보숲을 조성하여 명당을 그리다
장성, 비보숲으로 풍수점수를 무려 75점이나 올리다
개령, 지형으로 안 되면 비보숲을 만들어서라도 100점+α의 명당을 만들다
진주, 150점의 풍수읍치를 만들다
4부 풍수의 명당 논리에 맞는 읍치를 찾아라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읍치터를 잡은 고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00점의 명당, 낙안읍성을 낙안 사람들이 거부하다
고을
비보풍수로 풍수적 결함을 극복하다
마음의 눈으로 만들어낸 명당
조선 후기에는 풍수가 수도와 지방 도시(읍치, 궁궐과 관아, 마을과 집, 무덤 등 모든 곳의 터잡기에서 권위나 위엄을 표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양반 마을과 읍치 중에서 풍수의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곳이 많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 책에서는 주산, 좌청룡, 우백호, 안산 각각을 풍수점수 25점을 부여했다. 네 요소 모두를 갖추고 있으면 100점, 세 요소만 갖추면 75점, 두 요소만 갖추면 50점, 하나만 갖추면 25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으면 0점으로 보았다.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경우 부족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보충하여 풍수점수 100점의 명당터로 만들고자 했는데 이를 비보풍수(裨補風水라 한다. 그래서 명당터에 자리 잡지 못한 경우 예를 들어 주산과 좌청룡은 있는데 우백호와 안산이 없으면 우백호 부분에 비보숲을 조성하고 안산 부분에 인공 산인 조산(造山을 만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심지어 풍수점수 0점인 곳을 100점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풍수 형국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빵점 고을을 100점짜리 명당 고을로 만들다
풍수점수 빵점짜리 고을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상주, 충주, 청주, 원주, 전주, 나주 경주, 강릉을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유명한 고을이 풍수점수 빵점이라니 믿기 힘든 사실이다. 가장 흔한 곳은 풍수점수 25~75점짜리 고을이었다. 포천, 파주, 부평, 김화, 평창, 청양, 음성, 금구, 장성, 개령, 진주다.
풍수의 명당 논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고을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런 고을들은 풍수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비보풍수를 이용해 100점짜리 명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해동지도나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 나와 있는 고을지도를 통해 내용을 확인해보고 그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명당 고을을 거부한 사람들
대부분의 고을이 10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