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어바이아 루트에게
끊임없이 탈주하는 계절들
마운트홀리오크 여학교
이 위대한 절망의 굴레
조그만 스승들
하지만 나는 집을 떠나지 않아
2부 수전 길버트에게
다시는 외로워지지 않을 거야
우리만이 유일한 시인이지
수심에 잠긴 슬픈 연둣빛
나는 그냥 희망만 가질래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아
내게 빈 화폭이 있었더라면
어떤 총명함이 여기서 소멸했는가!
이 시가 더 마음에 들겠지!
이게 더 서늘한 느낌일까
사랑은 불멸하니까
네가 가라앉지 않도록
의식처럼 혹은 불멸처럼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느리게 그 신비를 건너가지
태양의 회고록
3부 새뮤얼 볼스에게
여름이 멈추어 있어요
당신의 꽃은 천국에서부터 왔지요
제 연필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여전히 간절한 눈은
제게는 친구가 얼마 없어요
당신에게 말해야 했던 것들
고통의 해협을 통과하고 있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목소리
친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예요
말문은 막힌 채
배반은 결코 당신을 모릅니다
아버지의 초상
소심함
아버지의 기일에
가까우면서도, 먼
믿는 만큼 의심하며
어떠한 죽음도 없네
4부 홀랜드 부인에게
새로운 길들 위에서
‘시간과 분별력’에 대해서
설거지까지 하고 있어요
인생은 가장 뛰어난 비밀이죠
울타리가 유일한 피난처예요
안과 의사에게 탄원해 주세요
가장 의기양양한 새
그의 감옥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나의 미인은 날개가 없네
위대한 불멸
모든 존재는 그대 안에 존재하리라
각자가 하나의 세계였으니까
5부 T. W. 히긴슨에게
시가 숨을 쉰다고 생각하신다면
선율처럼 혹은 마술처럼
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저는 멈출 수가 없어요
저 스스로는 통치할 수 없어요
손해라는 시험을 견뎌야 하네
버틸 수 없는 감옥에서
클수록 천천히 자라나네
시간은 통증을 시험할 뿐
편지는 불멸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존재하는 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주
불멸의 경험
사랑스럽게 불경한 것들
논리에 의해
●‘초자연적인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정체를 드러낸 것일 뿐!
에밀리 디킨슨의 편지들에는 꽃과 새, 계절 같은 친근한 소재에 추상적인 사고와 실존적인 주제들을 응축된 표현에 담은 간결한 스타일로 매우 현대적이고 독특한 감각을 보이는 시적인 문장들이 넘실거린다. “디킨슨의 편지들은 시인의 시 세계를 정의하는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위대한 시인이 아닌 가까운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 예술적 동지, 그리고 애달픈 연인으로서 디킨슨이 전하는 조심스러운 부탁이, 안타까운 고민이, 따뜻한 안부가, 당돌한 질문이, 그윽한 걱정이 어느 다정한 이의 속삭임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이곳에 도달하고 있었다. 시인이 신중하게 골라 쓴 단어들에 어린 설렘과 아쉬움의 감정에서 오히려 묵묵한 위로가 전해졌고, 때로는 그저 그 사랑스러운 편지를 정성스레 써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박서영, 「작품에 대하여」에서
디킨슨의 연인 로드 판사에게
오티스 로드는 시인의 아버지의 사상적 동지였는데 아내와 사별한 후에 디킨슨과 급격히 가까워졌다. “제 모든 삶은 (뺨은 열기로 가득 차요. 당신의 황홀한 단어들―(넘실거리는 말들―이 가까워지면.” 디킨슨이 로드 판사에게 보낸 격정적인 편지들은 수신인 측에서 제공한 것이 아니라 미발송의 초고들이 대부분이라 절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러브레터’가 되었다. “공기는 이탈리아만큼이나 부드럽지만, 그것이 저를 건드릴 때면 저는 한숨과 함께 그것을 내쳐버리죠. 당신이 아니니까요.”
디킨슨의 문학적 스승 히긴슨에게
토머스 히긴슨은 디킨슨 자신이 먼저 시적 스승으로 삼은 인물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정체를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그에게는 주로 문학적 관심사에 대한 주제가 많다. “제 관심은 둘레에 있어요―관습적인 것이 아닌, 모르는 것에 대해.” “제가 ‘통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죠―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클수록―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