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경매, 사랑의 증거
이번 경매에 온통 시간을 뺏기고 있어. 끝없이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지. 소장품을 어떻게 모은 것인지, 우리가 소장한 첫 작품은 무엇인지, 왜 이 경매를 하려는 것인지, 네가 가장 좋아했던 미술품은 무엇이었으며 나는 또 어떤지에 대해 줄곧 같은 대답을 반복해.(37쪽
한편으론 우리가 취향을 두고 맞선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서로에게 건넨 가장 큰 사랑의 증거가 바로 이 컬렉션과 집이 아닐까.(53쪽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사망한 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과 함께 구입한 소장품들과 집을 모두 경매에 내놓는다. 책은 피에르 베르제가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기로 결심하고 이를 진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소장품에 얽힌 사소하지만 애틋한 추억들, 경매 과정의 난관들, 곳곳에서 죽은 연인에 대한 기억을 발견하고 이를 담백하게 적어 내린 문장들을 통해, 경매가 단지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이 아닌 그들의 삶과 사랑을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일린 그레이, 피카소, 마티스 등 비밀에 싸여 있던 그들의 소장품들은 2009년, 일명 ‘세기의 경매’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다. 한화로 7000억 원이 넘는 경매 수익금은 이후 에이즈 치료 재단을 비롯한 사회 각계로 전부 환원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스물한 살이었고 남자와 살아본 적이 없었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너에게 그러한 삶이 존재할 수 있고 그럴 때 필요한 건 솔직함뿐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113쪽
1958년,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난다. 아직 수줍음이 채 가시지 않은 이브 생 로랑은 막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얼굴을 알린 참이었고, 27세의 피에르 베르제는 구상 회화의 왕자로 불리던 화가 베르나르 뷔페와 7년간 연애를 이어오고 있었다. 단번에 사랑에 빠진 둘은 이후 1961년 함께 패션 회사를 설립하고 피에르 베르제가 경영을 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