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우리, 만나서 포옹을 해요
1장 : 카스텔라 맛이 나는 봄 저녁
빛이 우리를 똑바로 비추는 것처럼
봄에는 봄에 집중하고, 인생에서는 서로를 즐깁시다
옛날 일들은 눈꺼풀 위에 올려 두고
해가 지면 놀러 가는 게 올바른 인생이지요
당신은 내가 겪은 일의 전부였지
마당이 있다면 뉘우칠 일들을 죄다 쓸어 모아서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 신비로운 여름
거기에 두고 온 뭔가가 있다는 듯이
나의 일이 처마만큼이나 유익하고 쓸모 있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죠, 뭐
논둑길 따라 베토벤을 들었지
그렇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서요
갖고 싶은 게 생긴다면 그걸 먼저 갖도록 하자
우리는 멀리 걸어 저녁별 아래에 설 것이고
달려라, 가랑비
2장 : 그늘 아래 회고주의자
내가 가진 이별의 인사가 바닥날 때까지
무엇보다 슬픈 일은
이번 생은 모두가 처음이라서
꽃향기가 나를 데리고 온 곳
매화가 졌나, 벚꽃이 피었나
뭉게구름 아래 회고주의자로 앉아서
좋은 인생에 대해 물어 온다면
그러면 그때 하면 되는 거고
당신에게 소용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인생은 때론 맛있는 우동 한 그릇의 문제일 때도
짐작만으로도 뭔가를 알 수 있다는 것
사소한 것을 즐기고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는 한
그게 딱 걸리더라고
당신 혹은 일요일, 다시 오지 않아 달콤한
안 그런 척할 뿐이죠
보이저호를 떠올리는 아침
헤어짐 보다는 가스레인지 밸브를 잠그는 일
밤은 언제 와서 깜빡일 것입니까
석양 기타
3장 : 여기엔 없는 기분
나는 어느 먼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포옹을 빼고 나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사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
영원히 살지 못해 사랑을 하는 거죠
바닥에 놓인 빈 트렁크를 본 후
거기엔 여기에 없는 기분이 있고 당신은 당신이라서요
인생은 ‘꿈과 여행’이 아니라 ‘밥과 킬로미터’
다 똑같다는 것, 언젠가 끝난다는 것
뭔가를 두고 왔지만 찾지 않기로 합니다
가끔 우린 세상과 상관없는 일이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다정한 여정
우리를 안아주고 위로하는 손바닥의 온기 같은 문장들
지나온 삶과 애쓴 마음에 관한 뭉클한 이야기들
섬세하고 투명한 문장으로 여행과 인생, 사랑과 위로의 감정을 그려낸 에세이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에피소드는 어떨 때는 한 편의 소설처럼 먹먹하게 읽히기도 하고, 어떨 때는 누군가 문득 보내온 한 장의 엽서처럼 설렘을 안겨주기도 한다. 작가는 특유의 부드럽고 감각적인 문체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여행, 그 길에 잔상처럼 남은 추억과 소회를 그려낸다.
삶과 타인을 향한 다정한 탐구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삼십 년째다. 여행과 사랑을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던 작가는 이제 오랜 여행을 지나와 생의 깊이를 아는 나이가 되었고, 인생의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세상을 보는 시선도 한층 깊어졌다. 스스로 “더 깊은 눈동자를 가지게 됐다”고 말하는 그는 비로소 “어떤 삶이든 그만의 애로사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겸허하게 고백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것. 그걸 아는 것. 타인에 대한 존중은 여기서 시작한다”라고 말하며 삶과 타인을 다정하게 보듬는다.
이번 책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은 일상에 대한 작가의 감각적인 탐구다. 그는 언제나 진실과 지혜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자였지만, 오랜 여행을 한 후에야 우리가 찾는 것은 언제나 우리 곁에 ‘이미’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작가는 “사소한 것을 즐기고 무엇이든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더 단단히 챙기고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오늘 나쁜 일이 생겼다면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기겠지. 오늘 좋은 일이 생겼다면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세상에는 좋은 일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오늘 편의점에서 무심코 집어 든 맥주가 너무나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90쪽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