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 우리를 매혹했던 애매함과 남다름의 홍콩 정체성
‘제3공간.’ 홍콩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공간, 누구도 누구에게 사상이나 이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선택하라고 강요받지 않는 공간. 홍콩이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아편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인구 8천 명 정도의 어촌이었던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일본의 통치 3년 8개월 포함 시절을 지나며 ‘남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홍콩인들의 사고방식 역시 혼종적으로 만들어졌다. 홍콩 특유의 애매함과 남다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홍콩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아가서 더 이상 애매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애매한 공간에 두지 않으려는 중국의 의지 역시 강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홍콩의 ‘분명함’을 원했고, 홍콩 역시 자신의 ‘남다름’ 즉 정체성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중국인, 영국식 자유를 맛보고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생각한 홍콩인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과 홍콩은 서로를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 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 집단기억이 만들어낸 오늘날 홍콩인 정체성
저자는 『사라진 홍콩』에서 오늘날 홍콩인 정체성이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지나며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 사건들에 대한 ‘집단기억’이 중국과 구별되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홍콩인 정체성이라 부르는 것들은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1950년, 60년대 대륙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정치 운동을 바라보는 홍콩인들에게 정치적인 안정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홍콩의 소중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홍콩(영국정부는 중국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