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 반란사건 제대로 보기
1부 한국, 공산주의의 세례를 받다
2부 1946년 10월 1일, 대구의 비극
3부 피로 물든 제주
4부 국군 제14연대, 대한민국에 반역하다
5부 축복으로 끝난 비극
해방공간의 남한 사회를 강타한
좌익들의 폭동ㆍ반란 3종
14연대 반란사건 참여자들은 대한민국의 국민 되기를 거부하고 조선인민공화국에 충성하며, 무상몰수ㆍ무상분배에 의한 토지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대한민국 법령을 인정하지 않고, 정권을 부정했으며, 공산주의를 해야 한다고 무장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었으니 이승만 정부에겐 ‘내부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의 핵심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14연대 반란사건을 계기로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내부의 적’이란 사실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혀졌다. 신생 대한민국은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생존을 위해 공산세력과 처절한 전쟁을 벌여야 했다.
자신들의 체제를 부정하고 적의 승리를 돕는 내부의 적을 “같은 민족이니까” 하며 구경만 할 정신 나간 정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을 먼저 타도하지 못하면 내가 타도당하는 것이 전쟁터의 살벌한 교훈이다.
중국의 국공내전 과정에서 장제스의 국부군 군대가 마오쩌둥의 군대에 쉽게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군 내부에 침투한 공산당의 책동 때문이었다. 미국이 제공한 최신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장제스의 국부군은 내부에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침투하여 사기를 저하시키고, 인민해방군을 만나면 싸우지도 않고 미국이 제공한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 집단 투항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14연대 반란은 비극으로 점철된 사건이었지만, 한편에선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계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숙군작업을 통해 군부에 침투한 붉은 세력을 거의 대부분 제거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은 6ㆍ25 남침을 당했을 때 와해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워 이 나라를 구해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14연대 반란(여ㆍ순 반란사건은 존 메릴이 말한 것처럼 ‘축복으로 끝난 비극’이었다.
-본문 중에서
▶ 내용 소개
1946년 10월 1일의 대구 폭동,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제주폭동, 194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