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찾는 곳에 길이 있다
제대로 알아보기 백의종군, 백의종군길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라, 백의종군길 답사의 시작
백의종군길 답사 1일차, 한성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다
백의종군길 답사 2일차, 나라 사랑, 부모 사랑을 생각하며
백의종군길 답사 3일차,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 것
백의종군길 답사 4일차, 집을 향한 이순신의 발걸음을 생각하며
백의종군길 답사 5일차, 기쁨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되어
백의종군길 답사 6일차, 길을 잃으면 방향을 먼저 찾아야
백의종군길 답사 7일차, 마침표가 아닌 쉼표, 힘들 땐 쉬어가라
백의종군길 답사 8일차, 홀로 앉아 비통함에 잠긴 이순신을 생각하다
백의종군길 답사 9일차, 뜻밖의 장소에서 환영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백의종군길 답사 10일차, 도로의 주인을 따지기 전에 배려가 먼저
백의종군길 답사 11일차, 춘향이 이야기 따라 만인의총에 이르다
백의종군길 답사 12일차, 한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백의종군길 답사 13일차, 당당하게 나가면 길이 열린다
백의종군길 답사 14,15일차, 도원수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
백의종군길 답사 16일차, 백의종군길인가 둘레길인가?
백의종군길 답사 17일차,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백의종군길 답사 18일차, 산길을 걷고 또 산길을 걸었던 하루
백의종군길 답사 19일차,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지를 돌아보다
백의종군길 답사 20일차, 함께 걸으며 함께의 의미를 되새기다
백의종군길 답사 21일차, 백의종군길 도보 답사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마치며 - 많은 사람들이 걷는 백의종군길 조성을 바라며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680km(1,700리 전 구간 복원,
전 천안함 함장이자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가 그 길을 걷고 보고 느끼다
‘옥문을 나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장군이 여러 신하들의 상소로 구명되어 4월 1일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담담하게 남긴 이 한마디가 <난중일기>에 실려 있다. 이튿날 장군은 아들들을 만나고 사흘째 되는 날 여러 대신들의 위로를 받은 뒤 영의정 류성룡과 이야기를 밤새 나누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길을 나선다.
‘일찍 남쪽으로 길을 나섰다.’
이순신은 4월 3일 한성을 출발한다. 권율이 있는 남쪽 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6대로 27 중 ‘영남로’나 ‘삼남로’ 중 한 길을 이용해야 했다. ‘영남로’는 이태원, 양재, 분당, 용인을 경유하여 동래까지 가는 길이고, ‘삼남로’는 용산, 사당, 과천, 수원을 경유하여 해남까지 가는 길이다. 숭례문 밖에서 남쪽으로 길을 떠난 장군은 동작나루로 향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로 ‘삼남로’를 택했던 것이다.
‘자는 방을 새로 도배하고 군관이 쉴 방 두 칸 만들었다. 오후에 원수가 진에 도착하므로 나도 즉시 가보고 원수와 함께 이야기하였다.’
이후 약 680㎞를 걸어 도원수 권율이 있는 합천에 도착한 날이 6월 4일이니 딱 60일이 걸렸다. 이 긴 여정을 ‘백의종군로’라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거쳐 간 곳은 다음과 같다.
서울 → 수원 → 평택 → 아산 → 게바위 → 이산 → 공주 → 논산 →익산 → 전주 → 임실 → 남원 → 운봉 → 구례 → 순천 → 석주관 → 악양 → 하동 → 산청 → 삼가 → 합천
26년간 천안함 함장 등 해군장교로 복무한 후 전역한 저자 우상규는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면서 느꼈을 리더로서의 긴박한 감정과 (사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장으로서 장군이 ‘백의종군로’에서 느꼈을 인간적 고난을 체험해보고 싶어 버킷리스트에 담았다.
현재 백의종군로는 서울에서 구례 운봉까지의 길을 고증하고, 지자체에서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