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경연일기
1565년(을축 명종 20년
1566년(병인 명종 21년
1567년(정묘 명종 22년, 선조 즉위년
1568년(무진 선조 1년
1569년(기사 선조 2년
1570년(경오 선조 3년
1571년(신미 선조 4년
1572년(임신 선조 5년
1573년(계유 선조 6년
1574년(갑술 선조 7년
1575년(을해 선조 8년
1576년(병자 선조 9년
1577년(정축 선조 10년
1578년(무인 선조 11년
1579년(기묘 선조 12년
1580년(경진 선조 13년
1581년(신사 선조 14년
해설
성리학과 실학의 절묘한 조화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
사회 개혁의 대하드라마, 경연일기
과거와의 대화, 오늘의 거울
율곡 이이의 생애(연보와 관직
미주
책 속에서
『경연일기』는 율곡의 나이 30세 때인 1565년(명종 20년 7월에 시작하여 46세 때인 1581년(선조 14년 11월에 끝나는 약 17년간의 방대한 기록이다. 당시 조정에서 일어난 왕과 여러 대신들의 정사 집행 내용과 함께 인물에 대한 평론, 그리고 율곡의 생각도 사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경세서이면서 수양서이기도 하다. 또 율곡 자신이 ‘금상실록’이라고 명명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스스로 사관의 위치에서 당시의 역사를 공정하게 이실직서 以實直書 하여 直書, 直筆의 전통을 세우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 p.8, 「서문」중에서
삼가 살피건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곧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것이다. 요순도 이를 어렵게 여겼으니, 어찌 사실이 아니겠는가. (… 그러나 이준경은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도학으로 인도하지도 못했고, 인재들을 널리 불러들이지 못했다. (… 기대승은 재주는 뛰어났지만 기질이 거칠어서 학문이 정밀하지 못하고 자신만 잘난 체하며 다른 선비들을 가볍게 여겼다. 또한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만 좋아하였다. 만약 그가 임금의 신임을 얻는다면 그의 비뚤어지고 고집스러운 병폐로 나랏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이황 같은 현명함을 가지고서도 그 추천하는 인물이 이와 같으니,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p.77, 「1569년(기사 선조 2년」중에서
1570년 5월
영의정 이준경 등이 백인걸의 상소를 의논하여 아뢰기를 “상소 중에 학문에 힘쓰고 현명한 사람을 조정에 불러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은 오직 전하의 밝은 지혜로 살펴서 돈독히 실행하기에 달렸습니다. 기타 폐단의 정치에 대해서 상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모두 관리들의 책무이니, 전하께 번거로이 여쭐 것이 없습니다. 그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을사년[1545]과 기유년[1549] 선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하고 그들[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을 성균관 문묘에 배향시키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