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버지의 말씀
2004년 유골 봉환사업에 뛰어들다
무릎으로 기어서 천 리를
2009년 1차 110위 봉환
2010년 2차 31위 봉환
후쿠시마 쓰나미와 62위
2012년 3차 36위 봉환
아시아 곳곳을 찾아다니다
청진의 아픔, 일본 청진회와 손을 잡다
서울역 노숙자가 일궈낸 작은 기적
대일항쟁기위원회의 부활과 상설화
한국과 일본의 상반된 접근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
못 다한 이야기
2부
인터뷰 기사 ① : 파이낸셜뉴스(2018. 5. 11
인터뷰 기사 ② : 브레이크뉴스(2018. 8. 24
특별기고 : 파이낸셜뉴스(2018. 8. 24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 존속에 관한 의견서(2015. 12
청와대 탄원서(2015. 12. 13
국회 청원서(2015. 12. 1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아태평화교류협회가 걸어온 길
온몸을 던져 써내려간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이야기 출간
? 200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177위의 유골봉환 과정 기록
? 정부·기업 지원 없이 민간 스스로 추진한 지난한 과정 엮어
? 강제동원의 뼈아픈 과거사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일깨워
?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은 우리 겨레의 중대한 숙원임을 제시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골봉환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가 출간됐다. 사단법인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이 지난 2004년부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사업에 착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곳곳을 수백 차례 탐방하고, 2009년, 2010년,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177위의 희생자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해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가 발간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한인은 총 800만 명(국내 650만, 국외 150만에 이르며 이중 성동원(위안부은 약 20만 명으로 학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한인 유골이 해외에 있을 텐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태무심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골봉환을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료 수집에서부터 유골 발굴과 수습, 봉환에 걸리는 오랜 시간, 막대한 비용,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내외 행정절차는 정부기관이라야 해결할 수 있다. 저자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온전히 자력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그 지난한 과정과 숱한 우여곡절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골봉환 위해 아시아태평양 곳곳 수백 차례 탐방
저자가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탄광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같이 일하다 죽은 사람들 얼굴이 자꾸 어른거려. 그 사람들 유골을 찾아 고향땅에 묻어주고 싶어. 불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