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청화주요 수행처와 창건·중건 사찰
추천사 대종사의 법향(法香 되새길 길잡이_진우
대종사의 사상과 행장 일목요연 정리_용타
서장“나 갈라네, 승가는 화합이네”(2003.11~현재
2003년 11월 12일 열반 “대중과 화합 잘 하시게”|“큰스님, 생사거래의 진상 다시 일러주소서”|원통불교의 중흥과 염불선의 대중화|위대한 수행자…전도에 최선, 미국 포교도
제1장 고해의 바다, 탄생과 젊은 시절(1923~1946
1923년 12월 13일 비범한 탄생|생명을 귀하게 여긴 모범생|간난신고의 일본 유학|갑작스러운 결혼과 강제징집|해방과 광주사범 편입
제2장출가와 스승 금타, 새로운 출발(1947~1949
1947년 발심 출가|수행의 원형과 운문암 시절|위대한 스승 금타|철학적 우주론의 규명과 「보리방편문? 저술|수행의 위차 정립과 「수릉엄삼매도(결? 저술|금타의 열반과 영향
제3장 현대사와 불교 정화의 격류 속에서(1950~1958
한국전쟁의 발발|망운중학교의 설립|첫 불사 혜운사의 창건|불교 정화의 혼돈 속에서
제4장 치열한 구도와 만행(1959~1977
1959년 겨울 두륜산 양도암으로|진불암 수행과 초의의 『선문사변만어』|광주 추강사 시절|지리산 백장암 및 벽송사 두지터 수행|곡성 태안사 주지|구례 사성암 수행과 오도 |남해 부소대 및 진주 두방사 수행|『금강심론』 원고 입수와 조방원과의 교류|이어지는 안거 수행과 번역 불사
제5장 사상의 정립과 하화중생 모색(1978~1984
상견성암 삼년결사(1978~1981와 『금강심론』·『정토삼부경』의 번역 출간|돈점 논쟁의 불씨와 『약사경』 번역|첫 언론 인터뷰 “정통 불법의 부흥을!”|첫 대중 법문, 백장암 만등불사 법문|베일 벗은 사상, 백장암 연속 법문(1984|안성 칠장사의 포효와 『정통선의 향훈』
제6장 태안사 시대와 회상의 형성(1985~1992.9
1985년 태안사 조실 부임|태안사 삼년결사(1985~1988|금륜회의 조직과 정중당 건립|천도재 등 각종
청화 대종사, 대표적 선승으로 정통 불법의 부흥을 통한 원통불교 주창
청화 대종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오랫동안 일종식과 장좌불와, 토굴 수행을 감행하면서 정통 불법의 부흥을 통해 인간론적 신앙관, 선오후수적 정혜쌍수, 화두선과 염불선의 회통,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는 원통불교론을 주장했다.
계속되는 분열과 대립, 전쟁, 물질만능주의, 기후와 환경 위기 등 심각한 현대 사회의 위기 헤쳐 나아갈 이념과 사상이 필요한데, 원통불교야말로 원효와 의상, 대각 의천, 보조 지눌, 태고 보우, 나옹 혜근, 서산 휴정, 사명 유정 등 역대 고승 대덕들이 역설해 온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세계 불교에 기여할 수 있는 한국 불교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불교 내의 회통을 넘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다른 세계종교와의 대화와 회통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통종교를 강조하기도 했다. 우주만유가 진여불성뿐이라는 일원론적이고 범신론적 존재론과 진리관을 바탕으로 제반 종교 및 사상과의 회통을 시도했고, 특히 법신 화신 보신의 삼신자성불 사상과 기독교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간 회통을 적극 시도했다.
정통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염불선의 대중화 시도
청화 대종사는 정통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공존을 추구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염불선의 대중화를 시도한 것으로도 큰 주목을 끌었다. 즉, 우주만유는 진여불성뿐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반야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수행한다면 모든 수행법이 선이 될 수 있다며 간화선뿐만 아니라 염불선, 묵조선 등 다양한 수행법의 회통과 공존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간화선만을 유일한 수행법으로 여기던 조계종의 풍토 속에서 한때 외도로 치부돼 엄청난 비판과 핍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숱한 가시밭길 속에서도 그가 염불선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근기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더 많은 대중이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종사가 입적하신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