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비현실에서 ‘삭제’가 가지는 의미
「사라지지 않아」는 게임 캐릭터인 ‘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자기 행성을 꾸미는 힐링 게임인데도 나를 만든 플레이어인 ‘현지’는 언제나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3년 전, 공들여 만든 게임 속 우주선이 폭발한 직후부터는 접속하지 않았다. 당신의 캐릭터가 애타게 기다린다는, 이 행성이 영구 삭제되니 백업하라는 시스템 메시지에도 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구 삭제를 2주 앞둔 날, 나의 행성에 불시착한 캐릭터 ‘상아’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자신의 우주선을 고쳐 주면, 현실에서 현지를 찾아 다시 접속하게 만들겠다고. 상아가 휴면 계정들이 모인 ‘잊힌 자들의 은하’를 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에서 우주 정거장 폭발 사고로 행방불명된 친구 ‘예지’를 찾기 위해서다. 작품 초반에 짧게 언급된 게임의 룰이 그 순간 이야기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행성이 통째로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만 삭제되는 것은 단 한 경우,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다.’(19쪽 게임 속에 예지의 캐릭터가 남아 있다면, 먼 우주로 사라진 예지 역시 살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게임 속을 헤매는 상아의 간절함은 주인공인 ‘나’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오롯이 전달된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열심히 가꾸다, 시들해지면 그만두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일이다. 「사라지지 않아」를 쓴 채은랑 작가는 잊힌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속 존재와 현실의 존재를 촘촘하게 연결하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을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수상 작가의 신작 「하얀 파도」 역시 ‘데이터’ 삭제를 화두로 삼는다. 시스템이 세상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도시’의 고등학생 재아에게 갑자기 사라지는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달력 속 16일, 텔레비전 화면 속 아이돌, 1학년 3반 교실, 달리던 버스, 그리고 언니의 방. 사라진 존재 대신 자리한 ‘하얀 공백’은 오직 재아에게만 보이고, 그들이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