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_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37_ 역생육가열전生陸賈列傳
38_ 부근괴성열전傅成列傳
39_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40_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
41_ 원앙조조열전袁 錯列傳
42_ 장석지풍당 열전張釋之馮唐列傳
43_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44_ 전숙열전田叔列傳
45_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46_ 오왕비열전吳王列傳
47_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48_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49_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50_ 흉노열전匈奴列傳
51_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52_ 평진후주보열전平津侯主父列傳
53_ 남월열전南越列傳
54_ 동월열전東越列傳
55_ 조선열전朝鮮列傳
56_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57_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58_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
59_ 순리열전循吏列傳
60_ 급정열전汲鄭列傳
61_ 유림열전儒林列傳
62_ 혹리열전酷吏列傳
63_ 대원열전大宛列傳
64_ 유협열전游俠列傳
65_ 영행열전幸列傳
66_ 골계열전滑稽列傳
67_ 일자열전日者列傳
68_ 귀책열전龜策列傳
69_ 화식열전貨殖列傳
70_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부록: 보임안서報任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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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정의를 좇아 행동하고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시기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위해 70편의 「열전列傳」을 지었다. 전체가 130편에 52만6500자로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사기史記』의 원래 명칭은 사마천이 밝힌 대로 『태사공서』였으며 『사기』가 아니었다. 사마천은 자신의 저서에서 여러 차례 ‘사기史記’라는 글자를 사용했지만 그 의미는 책 명칭이 아닌 모두가 ‘고사古史’ 혹은 ‘고서古書’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사기’라는 명칭이 사마천 저작의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은데, 범엽范曄(398~445이 지은 『후한서後漢書』 「반표전班彪傳」에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했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범엽은 남조 유송 시기의 사람이다. 이처럼 한나라 당시 사람들이 말했던 ‘사기’는 『태사공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으며, 또한 『태사공서』는 당시에 ‘사기’라는 이름을 갖지는 못했다. 『사기』가 사마천이 지은 저작의 고유명사가 된 것은 아마도 후한後漢 후기부터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광범위한 연구 성과 반영
20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사기』의 판본은 상당히 많다. 『사기』의 각본刻本은 북송 때 시작되었고, 이후에 가장 유명한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를 합친 ‘삼가주합각본三家注合刻本’이 출현했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평론을 숭상하는 기풍에 따라 평림본評林本들이 출현하는데, 이들 평론은 구절과 단락을 나누어 평론한 것도 있고 편 전체를 평론한 것도 있다. 청대에 와서는 송나라 판본을 보충한 백납본百衲本이 출현했는데, 완전하지 못한 잔본殘本들을 모아 완성시킨 것으로 백납본白衲本 『사기』라 부른다.
이후 현대에도 많은 『사기』가 간행되었지만 이번 번역에서 역자는 2013년 중화서국에서 간행한 ‘점교본이십사사수정본點校本二十四史修訂本 『사기』’를 이번 번역 작업의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