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1_ 백이열전伯夷列傳
2_ 관안열전管晏列傳
3_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4_ 사마양저열전司馬穰 列傳
5_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6_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7_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8_ 상군열전商君列傳
9_ 소진열전蘇秦列傳
10_ 장의열전張儀列傳
11_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12_ 양후열전穰侯列傳
13_ 백기왕전열전白起王 列傳
14_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15_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16_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
17_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18_ 춘신군열전春申君列傳
19_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20_ 악의열전樂毅列傳
21_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22_ 전단열전田單列傳
23_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24_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
25_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26_ 자객열전刺客列傳
27_ 이사열전李斯列傳
28_ 몽염열전蒙恬列傳
29_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30_ 위표팽월열전魏豹彭越列傳
31_ 경포열전 布列傳
32_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33_ 한신노관열전韓信盧 列傳
34_ 전담열전田 列傳
35_ 번역등관열전樊 灌列傳
참고문헌
사마천司馬遷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정의를 좇아 행동하고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시기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위해 70편의 「열전列傳」을 지었다. 전체가 130편에 52만6500자로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다. 『사기史記』의 원래 명칭은 사마천이 밝힌 대로 『태사공서』였으며 『사기』가 아니었다. 사마천은 자신의 저서에서 여러 차례 ‘사기史記’라는 글자를 사용했지만 그 의미는 책 명칭이 아닌 모두가 ‘고사古史’ 혹은 ‘고서古書’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사기’라는 명칭이 사마천 저작의 고유명사가 되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은데, 범엽范曄(398~445이 지은 『후한서後漢書』 「반표전班彪傳」에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했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범엽은 남조 유송 시기의 사람이다. 이처럼 한나라 당시 사람들이 말했던 ‘사기’는 『태사공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으며, 또한 『태사공서』는 당시에 ‘사기’라는 이름을 갖지는 못했다. 『사기』가 사마천이 지은 저작의 고유명사가 된 것은 아마도 후한後漢 후기부터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광범위한 연구 성과 반영
20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사기』의 판본은 상당히 많다. 『사기』의 각본刻本은 북송 때 시작되었고, 이후에 가장 유명한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를 합친 ‘삼가주합각본三家注合刻本’이 출현했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평론을 숭상하는 기풍에 따라 평림본評林本들이 출현하는데, 이들 평론은 구절과 단락을 나누어 평론한 것도 있고 편 전체를 평론한 것도 있다. 청대에 와서는 송나라 판본을 보충한 백납본百衲本이 출현했는데, 완전하지 못한 잔본殘本들을 모아 완성시킨 것으로 백납본白衲本 『사기』라 부른다.
이후 현대에도 많은 『사기』가 간행되었지만 이번 번역에서 역자는 2013년 중화서국에서 간행한 ‘점교본이십사사수정본點校本二十四史修訂本 『사기』’를 이번 번역 작업의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