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9
제1장 백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13
1. 백제의 시작 15
백제의 건국 세력은 누구? / 15
온조와 비류는 친형제인가? / 18
백제의 건국이야기에 신비한 이야기가 없는 이유는? / 19
2. 백제의 발전과 전성기 21
마한의 중심국으로 성장한 백제 / 21
근초고왕이 왜에 칠지도를 선물한 까닭은? / 25
백제가 중국의 서쪽을 지배한 대제국이었다고요? / 27
백제의 중앙이 지방을 다스리는 방법은? / 30
3. 삼국의 각축과 웅진 시대 32
한강을 둘러싸고 삼국이 싸운 이유는? / 32
왜! 백제는 웅진을 도읍으로 삼았을까? / 34
웅진 천도 초기의 정치 상황 / 36
무령왕 때 다시 강국으로 우뚝 서다 / 38
4. 사비백제 시기와 멸망 31
성왕이 수도를 사비로 옮긴 이유는? / 31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은 익산 천도를 계획했을까? / 42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스러진 백제의 꿈 / 46
특집 백제와 일본의 이상한 관계 48
백제가 일본을 가르쳤다고? / 48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거짓말, 임나일본부설 / 51
제2장 성(城으로 보는 백제인의 삶 55
1. 성이란 무엇인가? 57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는? / 57
거주하는 사람에 따라 성곽을 분류하면? / 60
성 쌓는 재료에 따라 성곽을 분류하면? / 64
서로 다른 고대 삼국의 성곽 / 69
2. 백제의 도성, 풍납토성 73
한성 백제 도성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 / 73
소외받고 상처 입은 풍납토성(발굴의 역사 / 76
백제 축성 기술의 결정체, 풍납토성 / 82
발굴을 통해 드러난 풍납토성의 건축 과정과 시기 / 87
3. 풍납토성 둘러보기 90
성벽이 잘 남아있는 북벽과 동벽 / 90
신성한 공간, 경당역사공원 / 92
풍납백제 문화공원 / 96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섰던 풍납토성 / 100
4. 몽촌토성 둘러보기 104
몽촌토성이 올림
2,000년 전의 서울을 찾아가는 여행
누구나 다 알만한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시대마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등장하기 전에는 또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흔적이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땅 속에 다양한 두께의 역사층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바빠서 잊고 살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중심이자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도 여러 시대의 흔적들이 쌓여 있습니다. 과거의 유적들은 옛 모습 그대로, 혹은 그때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유적들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과거의 전통들을 기억하고 이를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한 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서 ‘서울’의 정체성은 언제부터 형성되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실제로 1994년 서울시에서는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이 들썩 거릴 정도로 큰 행사의 한쪽에서 조용히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이 우리 역사의 수도가 된 것은 조선 왕조가 처음이 아니라 2,000년 전의 백제부터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벤트에 목말라 하던 서울시와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이러한 주장은 커다란 호수에 떨어진 자갈 한 개 정도의 파문만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결국 서울의 역사는 600년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계속된 대규모의 개발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적들을 파괴하거나 파괴될 위험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백제부터 내려온 중심지로서 서울의 역사상을 복원하기 위해 역사연구자들을 비롯한 뜻있는 분들은 쉼 없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개발로 파괴될 위기에 처했던 풍납토성의 재발견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백제의 방어용 성 정도로 알려졌던 풍납토성의 본격적인 발굴로 백제 도성의 웅장함과 백제 도성 사람들의 화려한 생활모습이 하나, 둘씩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