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내용과 절차를 통해 살펴본 과거제도
-부정과 외압이 개입할 수 없었던 블라인드 테스트
과거제도의 공정성은 먼저 시험의 내용과 실시 방법으로 보장되었다. 과거제도에 대한 흔한 오해는 관리로서의 실제 업무와는 무관해 보이는 유학 경전에 대한 지식만으로 관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해의 대상이 되는 문과에서는 실제로 통치 이념이 되는 경전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실무 행정 능력을 함께 평가했다. 흔히 말하는 사서오경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공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이나 문제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위기 대처 능력 등이 폭넓게 평가되었다. 마찬가지로 무과, 역과, 의과, 율과에서도 각자 맡게 될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였다.
절차적 측면에서, 과거시험은 철저한 블라인드 테스트로 치러졌다. 시험을 치를 때 이름을 쓰지 않고 명부 이름 하단에 적어둔 자호(字號를 활용했고, 시험 등수에 따라 입장하면 응시자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입장 순서를 임의로 바꾸었다. 시험 문제는 즉석에서 숫자가 적힌 찌가 담긴 통에서 찌를 뽑아 출제하여 예상할 수 없게 하였고, 복수의 시관이 채점하여 한 사람이 당락을 결정할 수 없도록 보완하였다. 또 시험 결과를 알릴 때에도 각 시관의 채점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 점수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과거 합격자는 왕의 명령으로도 바꿀 수 없었다. 1611년 3월 광해군은 전시 답안이 불경하다는 이유로 임숙영을 합격자 명단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했으나, 신하들은 이미 합격이 결정된 인원을 취소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3개월 동안의 논쟁 끝에 광해군은 자신의 명령을 거두었다.
과거 시험은 누가, 어떻게 응시하였을까?
-신분, 가문, 재산에 상관없이 급제할 수 있었던 ‘열린’ 시험
과거시험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양반만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과거제도는 양인이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으며, 선대가 금기를 어겼거나 본인에게 죄과로 인한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