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1장 『조성당일기』를 통해 본 김택룡의 일상 · 윤성훈
『조성당일기』라는 책에 대하여 | 김택룡과 그의 가족 | 김택룡의 생활공간 | 『조성당일기』에 나타난 김택룡의 일상, 시기 및 생활공간에 따른 재구축 | 『조성당일기』의 가치
2장 조성당 김택룡의 관직 활동과 교유 관계 · 장준호
머리말 | 김택룡의 가계와 출사 전 행적 | 선조조~광해군조의 관직 활동 | 김택룡의 사승 관계와 교유 관계 | 맺음말
3장 17세기 서원 인식의 변곡점, 조목의 도산서원 종향 · 신동훈
머리말 | 도산서원의 위상과 국학 | 향현의 서원 제향과 확산 | 맺음말
4장 예안 사족 김택룡과 영남 사족사회 · 백광열
머리말 | 조선 중기 사족사회 속에서 영남 사림파의 지위 : 인적 연결망에 기반한 고찰 | 영남 사림파 속에서 예안 사족 김택룡의 지위 | 김택룡의 사회적 활동과 조선 중기 사족 지배체제 | 맺음말
5장 조성당 김택룡의 인맥 기반과 문학 네트워크 · 최은주
머리말 | 문집과 일기를 통해 본 그의 인맥 기반 | 문학 네트워크의 형성 | 맺음말
6장 예안-영주-봉화를 잇는 김택룡의 생활공간 복원 · 류인태
조선시대 생활일기의 공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택룡의 생활권역과 활동범위에 관한 고찰 | 점, 선, 면에 기초한 김택룡의 생활공간 복원 | 공간 데이터로 『조성당일기』를 읽는다는 것에 관해
당대 지배 체제 내부로 깊이 들어가고자 했던
조선시대 사족들의 서원문화와 그 활동
『조성당일기』에 기록된 내용 중 매우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는 당시 조선시대 사족들을 연결하고 때로는 그 지위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는 서원문화다. 김택룡은 낙향 후 후진을 양성하고 스승인 월천을 도산서원에 종향하는 일을 추진했다. 조선시대 서원에는 당시 학문 발전에 공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를 주향(主享, 위패를 정면에 놓는 것하여 모셨는데, 이때 제향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선비들의 공론에 따라 국가가 선정했다. 따라서 서원이 사액賜額 받게 되면 해당 서원의 제향자는 물론 그 서원이 위치한 지역, 서원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대대손손 그 혜택과 명예를 누릴 수 있어 이는 당시 사족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김택룡은 자신의 스승인 월천을 퇴계의 문인 중 유일하게 도선사원에 종향하는 데 성공했고, 이 ‘월천 종향’ 사건을 통해 그는 원래 그리 높지 않은 신분으로 정계에 진출한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극복할 수 있었음과 동시에 퇴계학파 비월천계 인물들과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처럼 『조성당일기』에는 조성당 김택룡이 살았던 16~17세기, 조선 개국 이래 서서히 형성되어 온 사족사회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사족이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지주로서 경제적 기반을 잡고 이를 혈연과 혼맥을 통해 결집·확장하며 나아가 학맥을 통해 지역사회와 중앙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장해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경제생활과 교유 관계, 여가 활동과 산수 유람…
현대의 학문적 도구를 바탕으로 복원된 향촌 사회 속 양반의 모습
『조성당일기』에는 여타 공적인 기록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사적인 공간에서 영위된 조선시대 사족의 ‘사적인 삶’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일기에는 살림의 근간이 되는 농사를 점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자주 등장하는데, 언제, 노비 누구를 시켜 밭을 갈고 파종했는지, 전토田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