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호랑이가 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범호는 한국전쟁 때 목숨을 잃고 만다. 범호의 아들 갑이는 범호의 뜻을 이어 군인이 되지만 월남으로 떠난 사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인지 무사히 월남에서 돌아온 갑이는 분이와 결혼해 태암이와 태석이를 키우며 개량종 밤나무와 토종약밤나무를 가꾼다. 하지만 태암이의 학비로 대부분의 땅을 잃게 되고 태석이는 말없이 집을 나간다. 미국으로 유학 간 태암이는 그곳에서 결혼해 캐리를 낳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갑이와 분이는 소식이 드문 태암이와 집을 나간 태석이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 약밤나무는 자신을 잘 돌봐준 갑이네에 은혜를 갚고 싶어 한다. 50년 살기도 어려운 밤나무가 100년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은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이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가지와 푸석한 잎으로는 자신이 없다. 약밤나무는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백 년 사이 빠르게 변한 세상을 떠올리며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본다.
범호네 4대가 겪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 운동과 월남전 같은 과거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우리나라가 되기까지의 희생과 민족정신을 일깨운다. 또한 약한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기 쉬운 현대 사회의 문제점까지 꼬집으면서 아이들이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기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까마귀와 까치 사이에서 태어난 까마치, 중국 밤나무와 한국 밤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약밤나무, 천연기념물이 된 철새를 통해서는 혼혈인 찬이와 캐리도 모두 우리 민족임을 보여준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민족의 뿌리를 알고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열린 마음으로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탈에 심은 작은 약밤은 커다란 나무가 되어 약밤나무단지를 만들 정도로 자손을 퍼트린다. 그 긴 시간, 대를 이어 약밤나무를 보살핀 범호네 4대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혼을 배우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힘을 기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