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글을 시작하며_4
1. 무관학교에서 귀한 인연을 만나다_10
2. 계몽운동을 시작하다_15
3. 베이징에서 나라 안팎을 연결하다_22
4. 신규식과 함께 신해혁명의 현장으로 _34
5. 국내로 끌려와 유배를 떠나다_43
6. 대동단결선언과 대한독립선언_48
7.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핵심 인물로_648. 만주 독립군 부흥과 3부 통합을 위해_77
9. 유일당운동을 벌이다_90
10.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장이 되다_95
11. 조성환의 두 부인과 아이들_103
12. 한국광복군 만들기에 힘쓰다_109
13. 군무부장으로서의 다양한 활동_135
14. 고국으로 돌아오다_150
15. 효창원에 영원히 잠든 군사전문가_168
16. 글을 맺으며_175
조성환의 삶과 자취_178
참고문헌_182
찾아보기_185
출판사 서평
임시정부 군무부장
통수부 막료와 판공처 주임
대한독립촉성 국민회 위원장
오로지 무너지는 나라를 지탱하려 버티고, 무너진 나라를 찾아 세우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군사에 있어 훌륭한 장령將領?일 뿐 아니라 강직하고 고결한 인격의 유소자로서 진실로 존경할 만한 애국 영수이었던 만큼 일반의 애도하는 정도 자못 높은 바인데…….
-『자유신문』1948년 10월 9일
신문 기사는 조성환을 훌륭한 군사지도자이요. 강직하고 고결한 인격인이며, 그래서 존경할 만한 애국 지도자라고 평가하였다. 청사 조성환은 27세부터 1945년까지 무려...
임시정부 군무부장
통수부 막료와 판공처 주임
대한독립촉성 국민회 위원장
오로지 무너지는 나라를 지탱하려 버티고, 무너진 나라를 찾아 세우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
군사에 있어 훌륭한 장령將領일 뿐 아니라 강직하고 고결한 인격의 유소자로서 진실로 존경할 만한 애국 영수이었던 만큼 일반의 애도하는 정도 자못 높은 바인데…….
-『자유신문』1948년 10월 9일
신문 기사는 조성환을 훌륭한 군사지도자이요. 강직하고 고결한 인격인이며, 그래서 존경할 만한 애국 지도자라고 평가하였다. 청사 조성환은 27세부터 1945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한 번도 곁눈질 하지 않은 채 오직 겨레를 위해 피와 땀을 쏟았다. 그는 무너진 나라를 위해 독립군을 길러내고, 한국광복군을 조직한 군사전문가로 구국투쟁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조성환은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장교출신으로 1907년 신민회에 발을 들인 뒤 애국계몽운동에 이바지하고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교두보를 확보한 뒤 만주로 이동하여 독립전쟁에 기여하였다. 1930년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한 그는 1940년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을 때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의 책임자인 군무부장을 맡았으며 통수부의 막료와 판공처 주임으로서 군정軍政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군사업무를 군령과 군정으로 나눈다면 조성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