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앞서
첫 번째 강의, 오리엔테이션
―학생들의 전형적 질문에 대한 칸트식의 응답―
1. 인간은 동물이다!?
2.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3. 칸트 윤리의 설득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 번째 강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
―칸트 인식론의 혁명적 발상―
1.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미
2. ‘사물 그 자체’는 인식될 수 없다 ―흄과 비트겐슈타인의 회의주의
3. 자연 자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의 선험철학
세 번째 강의, 수학과 자연과학을 넘어 형이상학으로
―지성의 범주를 넘어 이성의 이념으로―
1. 형이상학적 인식의 특징
2. 순수 수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3. 순수 자연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4. 형이상학 일반은 어떻게 가능한가?
5. 전통적 형이상학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네 번째 강의,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가?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
1. 영혼론적 이념들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
2.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과 ‘경험적 실재론’
3. 현상적 자아의 부정을 넘어 본체적 자아의 세계로
다섯 번째 강의, 도덕의 세계와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자연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1. 우주론적 이념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2. 수학적 이율배반
3. 역학적 이율배반
4. 의지의 자유와 도덕세계의 이념
여섯 번째 강의, ‘도덕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윤리학의 본질―
1. 도덕 형이상학의 필요성과 의의
2. 비트겐슈타인을 통해서 본 윤리학의 본질
일곱 번째 강의, ‘선의지’란 무엇인가?
―선의 의미와 선의지―
1. 선의지와 의무
2. 선이란 무엇인가 ―선 · 악의 개념
3. 인간에 내재한 선의 소질
여덟 번째 강의, ‘도덕법칙’이란 무엇인가?
―도덕법칙과 정언명령―
1. 준칙과 법칙
2. 도덕법칙과 자유
3. 정언명령이란 무엇인가?
아홉 번째 강의, 도덕법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정언명령의
요즈음 뉴스를 보다 보면,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만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말세’라느니 ‘세상이 흉흉’하다느니 하는 소리는 고릿적부터 들어왔건만, 그 얘기가 어느새 무겁게, 피부에 와닿는 시절인 듯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조차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윤리보다는 이익을,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타인보다는 자신만을 중시합니다. “하필 왜 이익을 말”하느냐는 철 지난 사상가의 물음도, “이익을 보면 의로운지 생각”하라는 그 철 지난 사상에서 유래한 한 영웅의 유묵도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윤리가 무너진 오늘에 칸트의 윤리학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칸트일까요? 윤리를 논한 게 칸트 하나도 아니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현대의 철학자도 있는 마당에 왜 하필 칸트의 윤리학을 요청하는 걸까요? 이 책의 저자는 칸트의 윤리학이 우리 전통 윤리와 유사하기에, 우리가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 전통 윤리라고 함은, 흔히들 탈레반이라는 말과 함께 일컫는 유교입니다. 그런데 칸트의 윤리학이 유교와 유사하다니, 이게 과연 정말일까요? 얼핏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인 듯하지만 사실 칸트의 윤리학과 유교 도덕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러한 유사성은 두 윤리의 원전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기본적인 원칙부터가 그렇습니다. 모두 잘 알다시피 칸트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유교에서는 이를 조금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댑니다. 마치 우리는 조금 도덕을 어겨도 좋고 다른 사람은 그래선 안 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으면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내가 지키려 하지 않으면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