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_
四권목차
(삼국유사고증 하1
삼국유사 권제3(三國遺事 卷第三
흥법 제3(興法 第三
흥법 제3興法 第三 _17
난타벽제難 闢濟 _31
아도기라阿道基羅 _38
원종흥법 염촉멸신原宗興法 滅身 _73
법왕금살法王禁殺 _106
보장봉로 보덕이암寶藏奉老 普德移庵 _110
동경흥륜사금당십성東京興輪寺金堂十聖 _134
탑상 제4(塔像 第四
탑상 제4 塔像 第四 _141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坐石 _141
요동성육왕탑遼東城育王塔 _149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_160
고려영탑사 麗靈塔寺 _167
황룡사장육皇龍寺丈六 _170
황룡사구층탑皇龍寺九層塔 _181
황룡사종·분황사약사·봉덕사종皇龍寺鍾·芬皇寺藥師·奉德寺鍾 _194
영묘사장육靈妙寺丈六 _199
사불산·굴불산·만불산四佛山·掘佛山·萬佛山 _201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 _208
흥륜사벽화보현興輪寺壁 普賢 _211
삼소관음 중생사三所觀音 衆生寺 _214
백률사栢栗寺 _225
민장사敏藏寺 _234
전후소장사리前後所將 利 _237
미륵선화·미시랑·진자사彌勒仙花·未尸 ·眞慈師 _269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 夫得· 朴朴 _282
분황사천수대비·맹아득안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 _299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 _302
어산불영魚山佛影 _321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_339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五臺山 叱徒太子傅記 _369
대산월정사오류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 _375
남월산南月山 _381
천룡사天龍寺 _397
무장사 미타전 藏寺彌 殿 _406
백엄사 석탑 사리伯嚴寺石塔 利 _412
영취사靈鷲寺 _418
유덕사有德寺 _422
오대산문수사석탑기五臺山文殊寺石塔記 _426
후기 _429
‘우리는 과연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의 파랑(波浪을 지나, 북국(北國 고려로의 통합과 재탄생을 그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구려인이 되었고, 광활한 대륙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큰 그림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연은 우리에게 과제를 남긴 것이다.
책 속에서
고려본기를 보면 ‘소수림왕의 즉위 2년 임신은, 곧 동진의 함안 2년으로, 효무제가 즉위한 해에 해당한다. 이해, 전진의 부견이 사자와 함께 승려 순도로 하여금,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
또 소수림왕 4년 갑술에, 아도가 진(晋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이듬해 을해 2월에 초문사를 창건하여, 그곳을 순도에게 맡기고, 나아가 이불란사를 창건하여, 이곳은 아도에게 맡겼다. 이것이 고구려의 불법의 시초라고 한다. _18면
처음 찰주를 세우는 날에, 공장이 본국 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을 꿈꾸었다. 공장은 곧 의심이 나서 손을 멈추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어두컴컴한 속에서 한 노승과 한 장사가 금전문서 나와, 곧 그 기둥을 세우고, 노승과 장사는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공장은 이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찰주기(刹柱記에는 “철제 노반 위의 높이가 42척이고 이하는 183척이다.”라고 했다.
자장이 오대에서 받은 사리 100알을, 기둥 안과 통도사 계단과 태화사 탑에 나누어 안치하였는데[일찍이 중국에 유학을 갔을 때, 지나던 대화지의 신인(神人과 그 아들인], 이것은 호법룡의 청을 따른 것이다. _185면
제54대 경명왕 때, 흥륜사 남문과 좌우 낭무가 불에 탄 채 아직 수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정화와 홍계 두 스님이 장차 시주를 모아서 수리하려고 하였다. 정명 7년 신사 5월 15일에 제석이 절의 왼쪽 경루에 내려와서 10일 동안 머무르니. 불전과 불탑 및 풀과 나무 흙과 돌들이 모두 이상한 향기를 풍기고. 오색구름이 절을 덮으며 남쪽 못의 어룡이 기뻐서 뛰놀았다.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 전에 없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