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리극
살인 수사는 장기와 같았다. 누가 팔각형의 말을 집어 든 순간, 시간은 정지하고 세상에는 전략, 작전, 질문만 남는다. 어진과 다음 행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마력에 사로잡히는 듯했다. -본문 중에서
왕세자가 사라진 밤, 네 명의 여인이 살해당하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과정에서 왕세자, 세자빈, 의녀, 다모, 의원, 종사관, 사령관 등 궁궐 내부 인사들이 사실관계를 두고 첨예하게 얽힌다.
사도세자라는 역사적 인물을 기반으로 창작, 출간된 작품들은 이미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작품들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 관계에 집중하거나, 뒤주에 갇혀야 했던 세자의 죽음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붉은 궁》은 왕족이 행한 폭력이 한 하층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 집중하며, 성별과 신분의 차별에 대항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왕족 중심으로만 쓰여진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왕족이 아닌 성 바깥의 평민들을 보살피는 의녀, 하층민을 치료하는 다모 등 역사의 바깥에 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끌어온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하나의 이야기장으로 불러 모은 《붉은 궁》은 인물 간의 여러 갈등 구도를 통해 심리적 긴장을 부여한다. 주인공 현은 성별과 신분에 의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데, 마찬가지로 영조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세자를 보며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임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자의 잔혹함에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한다. 세자 뿐 아니라 살인 용의자들의 악한 모습만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까지도 다면적으로 보여 주어, 과연 누가 진범일지 유추하는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 세자를 끌어내리려는 문 소원, 궁녀와 비밀리에 혼인한 군 의원, 남몰래 복수의 칼날을 다듬어 온 인영 의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진범 추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된다.
혜민서에서의 잔혹한 살인사건 이후로도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