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에서 전기로 음악을 만드는 여섯 음악가
그들이 모니터와 전선 속에서 빚어낸 음의 형태
오늘날 한국에서 ‘전자음악’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풍경은 어떤 것일까? 일렉트로닉 댄스뮤직에 빠져 있(던는 이라면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의 땀 냄새와 야광봉부터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국내의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홍대와 합정 또는 이태원 부근의 클럽에서 CDJ를 조작하는 무표정한, 혹은 활짝 웃는 얼굴들을 그릴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전자음악이란 이름은 반드시 공연과 기계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이 음악의 시작점이 전기 그리고 기계와 유착된 채 발전해왔으며, 공연 전‘입력된’ 곡을 연주하는 방식의 특수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적으로, 즉 인간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음이 증명된 1800년부터, 인류는 전기로 작동되는 각종 장치를 발명해왔다. 1821년의 전기 모터부터 1879년이 조명 전구, 1884년의 증기 터빈에 이르기까지.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은 기계들은 인류의 생활을 더 밝게, 빠르게, 편리하게 바꿨다. 동시에 이로써 기후 위기를 불러온 각종 발전을 가속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의미와 면모가 공존하는 전기의 활용은 예술 분야에서도 선명한 경로를 그려냈다. 1977년 뉴욕 브롱크스의 정전이 말미암은 대규모 (전자기기 절도 사건은 도심에 각종 블록파티block party를 열게 했고, 이때 형성된 여러 크루는 “한때 로컬 장르에 불과했던 브롱크스의 음악”을 “‘힙합’이라는 이름”(180~181쪽으로 대중화시킨다. 전자기기를 본격적으로 내부에 끌고 온 전자음악은 비트매칭beatmatching과 샘플링sampling 등 다양한 창작의 방법론을 진화시켰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 또한 그 과정을 선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은 음악이 어떻게 전자기기와 결탁해왔는지, 또한 이를 통해 어떻게 씬scene이 형성되었는지 인지한 채 작업을 이어간다. 이 인지의 과정은 분명 필연적인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