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과 대공황의 시기 :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된 일자리와 바비즌이라는 안전한 공간
19세기 말 자기 삶을 스스로 주도하는 ‘신여성’이라는 여성상이 등장한 이후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장으로 떠난 남자들의 일터를 여성이 채우게 되었고, 대학에 진학하는 여성의 수가 급증해 사무직 근무도 결혼 전 준비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920년대에는 이른바 ‘플래퍼’라 불린 과격한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들과 시시덕거렸다. 일하는 여성은 독립적으로 살며 도시 생활과 소비,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 무렵 설계된 바비즌 호텔은 마케팅 관점에서 여성성에 독립이라는 개념을 결합했다. 바비즌은 구상 단계부터 예술적 성향이 있고 현대적인 여성이 선호할 만한 공간으로 의도되었고, 이름도 19세기 프랑스 예술운동인 바르비종파에서 딴 것이었다. 바비즌은 예술가, 배우, 음악가, 패션모델을 꿈꾸는 젊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체육관과 스쿼시 코트와 수영장, 시간 단위로 대여 가능한 음악 및 미술 스튜디오, 매달 최신 베스트셀러가 추가되는 도서실, 매달 열리는 연극, 콘서트, 강연과 명문 여대 클럽에 대해 홍보했다.
그러나 대공황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바비즌의 전략도 달라져 소박한 객실의 경제적 이점과 멋진 환경에서 사회적 네트워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제 일하는 여성은 ‘가장’인 남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져 비난받게 되었으므로,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당시 여자만의 일로 여겨지던 비서직과 예쁘게 보이는 것, 즉 모델 일이었다. 두 가지 모두 바비즌에 중요했다. 캐서린 깁스 비서학교는 애초에는 ‘고학력’ 젊은 여성을 위한 예비신부 학교에 지나지 않았지만 대공황 시기 실제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격증을 따려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아지면서 바비즌의 두 층을 통째로 기숙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방을 차지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