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사_ 5
범례_ 16
해 제(윤상수_ 17
서 序 ·윤상수
정성의 서鄭性序 51
황천추의 발黃千秋跋 54
풍전해의 발馮全垓跋 56
우준의 서于準序 59
구조오의 서仇兆鰲序 63
명유학안서明儒學案序 68
명유학안서(원서明儒學案序(原序 74
가윤의 서賈潤序 80
가박의 발賈樸跋 84
가념조의 발賈念祖跋 87
막진의 서莫晉序 89
명유학안발범明儒學案發凡 95
사설 師說 ·윤상수
정학 방효유方正學孝孺 103
월천 조단曹月川端 107
경헌 설선薛敬軒瑄 110
강재 오여필吳康齋與弼 112
잉부 진진성陳剩夫眞晟 116
소천 주혜周小泉蕙 117
백사 진헌장陳白沙獻章 119
극암 진선陳克菴選 122
일봉 나륜羅一峯倫 123
허재 채청蔡虛齋淸 126
양명 왕수인王陽明守仁 128
동곽 추수익鄒東廓守益 133
용계 왕기王龍溪畿 135
정암 나흠순羅整菴欽順 139
경야 여남呂涇野 147
운포 맹화리·아강 맹추·양화 장원변 孟雲浦化鯉·孟我疆秋·張陽和元 149
염암 나홍선·대주 조정길·당남 왕시괴·정우 등이찬 羅念菴洪先·趙大洲貞吉·王塘南時槐·鄧定宇以讚 152
근계 나여방羅近溪汝芳 155
견라 이재李見羅材 157
경암 허부원許敬菴孚遠 159
명유학안 권1, 숭인학안 1 明儒學案 卷一, 崇仁學案一 ·강경현
빙군 강재 오여필 선생聘君吳康齋先生與弼 163
명유학안 권2, 숭인학안 2 明儒學案 卷二, 崇仁學案二 ·윤상수
문경 경재 호거인 선생文敬胡敬齋先生居仁 217
교유 일재 누량 선생敎諭婁一齋先生諒 274
서산 사복 선생謝西山先生復 282
공명 정항 선생鄭孔明先生伉 284
봉의 호구소 선생胡鳳儀先生九韶 286
명유학안 권3, 숭인학안 3 明儒學案 卷三, 崇仁學案三 ·이봉규
공간 장거 위교 선생恭簡魏莊渠先生校 291
시랑 인재 여우 선생侍郞余齋先生祐 347
명유학안 권4, 숭인학안 4 明儒學案 卷四, 崇仁學案四 ·이봉규
태복 동암 하상박 선생太僕夏東巖先生尙朴 35
책 속에서
오여필吳與弼은 자가 자부子傅이고 호는 강재康齋이며 무주撫州의 숭인崇仁 사람이다. 부친은 국자사업國子司業 오부吳溥이다. 선생이 태어날 때 조부의 꿈에서 선조의 묘에 등나무가 얽혀 있는데 한 노인이 그것을 가리켜 반원의 등나무라고 하였으므로, 초명은 몽상夢祥이었다. 8~9세에 이미 기개를 자부하였다. 19세에【영락연간 기축년(1409이다.】 도성【금릉金陵이다.】에서 부친을 뵈었다. 세마洗馬 문정文定 양부楊溥를 따라 배우며 『이락연원록』을 읽고는 개연히 도에 뜻을 두고 말하기를 “정백순程伯淳(明道 程顥도 사냥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곧 성현도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겠다. 누가 배워서 이를 수 없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p.164
제학提學 이령李齡과 종성鍾城이 연달아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맡아 달라고 청하였고, 제생諸生도 귀계貴溪의 동원서원桐源書院에서 강학해 달라고 청하였다. 회왕淮王이 그의 소문을 듣고 왕부王府에서 『역易』을 강의해 달라고 청하였다. 왕이 그의 시문을 출판하려 하자 선생은 사양하면서 “아직 조금 더 진보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선생은 근엄하고 굳세고 청빈하였으며, 매사에 법도를 따랐다. 매일매일 반드시 공부의 계획을 세우고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스스로 반성하였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자세하게 구별하여 죽을 때까지 뒤섞어 놓고 같이 사용하지 않았다.
--- p.218
거업록
“고요한 가운데에 무언가가 있다[靜中有物].”는 것은 단지 언제나 잡아서 지키고 주재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니, (이것을 안다면 공허하고 적막하거나 어둡고 막힐 근심이 없을 것이다.
마음을 잃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래도 좋은 일이다. 곧바로 일깨우고 수렴하여 다시 도망가지 않게 (하면 되니, 이것이 바로 경을 위주로 하여 마음을 보존하는[主敬存心] 공부이다. 만약 마음을 둘 곳을 모른다면 망막하고 아득할 것이니, 이렇다면 무슨 공부를 하겠는가!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