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주의에 관한 생의 마지막 호소
1880년경 50대 초의 톨스토이는 정신적 위기와 종교적 회심의 시기를 거치며 소설가 톨스토이에서 사상가 톨스토이로 거듭난다. 사상가 톨스토이가 여러 논설과 에세이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한 것 중 하나는 폭력과 살인에 대한 절대적 거부, 설사 악에도 폭력으로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비폭력주의였다. 어떠한 폭력도 진정한 기독교 정신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기독교 평화주의’와 권력과 결탁한 교회와 국가(폭력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기독교 아나키즘’이 결합된 그의 독특한 비폭력주의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작 《죽이지 마라》(1896~1901와 《비폭력에 대하여》(1904~1905가 전쟁과 국가 폭력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옹호하며 사형제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면, 톨스토이가 타계하기 전 마지막 3여 년(1907~1910의 글들을 모은 《폭력의 법칙 사랑의 법칙》은 훨씬 더 깊어진 사색과 넓어진 시각으로 폭력의 문명사적 뿌리를 밝히고 참다운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스스로를 “생의 마지막 날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죽음의 관 어귀에 선 자” “매 순간 죽음을 기다리는 여든의 노인”이라 칭하는 톨스토이의 비폭력주의에 대한 감동적인 마지막 호소에 귀 기울여보자.
왜 세상에 폭력이 만연하게 되었나?
1905년 러일전쟁의 패전과 러시아혁명의 실패 이후 제정 러시아의 사회불안은 가중되었다. 농민과 지주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혁명사상이 고취되면서 폭동과 총파업, 테러와 암살 등 반정부 운동이 빈발했고, 이에 전제 정부는 투옥과 추방, 사형이라는 탄압으로 일관했다. 세계 전체로도 서구의 식민지 쟁탈전이 고조되는 가운데 제국주의의 억압에 맞선 피지배 민족의 무장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톨스토이는 “혁명가들은 정부에 반대하고 정부는 혁명가들에게 반대하며, 노예화된 민족들은 압제자들에 반대한다. 국가 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동과 서가 투쟁을” 벌이는 이러한 상황을 “만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