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사 설산 철안
추모사 인묵 경훈
자 서 월운 해룡
01 고향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용산리 버드능이다
02 초등학교 졸업하고 재당숙께 한문을 배우다
03 새벽에 집을 떠나다
04 월남 피난민수송열차에 묻어 남쪽으로 내려가다
05 남해 화방사로 들어가다
06 화방사에서 중도 속도 아닌 신분으로 지내다
07 화방사 밑 산기슭에 어머니 움집을 지어드리다
08 단옷날 화방사에서 머리를 깎고 망운암으로 올라가다
09 어머니는 동생과 고향으로 돌아가시게 하다
10 망운암에서 6·25사변 발발 소식을 듣다
11 고성 문수암에 가서 첫 겨울을 나다
12 범어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방부를 들이다
13 범어사에서 사부 운허 스님께 첫인사를 올리다
14 범어사에서 별난 첫 여름 안거를 성만하다
15 취처승 물러가라는 격문 쓰고 곤욕을 치르다
16 국군영현안치소 참배차 오신 대통령께 교단 정화 필요성을 말하다
17 범어사에서 동안거 지내고 부산 법화사로 가서 쉬다
18 사찰의 불량답 돌려주라는 대통령 유시 발표되다
19 대처승 물러가라는 제1차 대통령 유시 발표되다
20 마산 성주사에서 삼동결제 중 탈진으로 죽을 고비를 겪다
21 통도사 천자각에 강원 열리고 운허 스님 강사로 부임하시다
22 서울에서 통도사를 거쳐 다시 사부님 따라 연화사로 가다
23 사부님께 알리지도 않고 ‘제3차 비구승대회’ 참석하다
24 집 나 온 뒤 8년 만에 피난 나오신 부모님을 찾아뵙다
25 다시 진주 연화사로 내려와서 홀로 겨울을 지내다
26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를 이수하다
27 대교과 졸업 후 비구계 또 받고 국내 일주 여행 떠나다
28 한라산과 제주 일대 풍물을 둘러보다
29 통도사 강원에서 중강 맡고, 사기류를 탈초 출판하다
30 나의 재적 본사를 통도사에서 봉선사로 바로 잡다
31 사부님께 입실하고 전강 받다
32 사부님의 불교사전 출판을 인권하다
33 불교사전 카드 정리하고, 역경사업 차 사부님 대통령 만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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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못다 갚을 은혜; 월운당 도중사
신규탁 엮음
“사문의 신분으로는 분명 군일임을 알지만 고인들께서도 이미 이르시기를 ‘실제이지(實際理地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나 불사문중(佛事門中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하셨으니, 출가사문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갚아야 할 은혜는 잊지 말자’는 정도로 마음에 간직하고 정리하기 위해 겪은 일들의 편린(片鱗을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정리해둔다.”
‘역경보살’로 찬사를 받으며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한문경전을 우리말로 옮기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매진해온 화엄종주 월운당 해룡 스님이 자필 회고담 ‘못다 갚을 은혜; 월운당 도종사’를 남긴 이유다. 지난 6월16일 봉선사 다경실에서 세납 95세, 법랍 74세로 입적한 스님이 출가한 1949년부터 쓴 평생의 일기를 토대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며 80개의 항목으로 정리해 연대순으로 회고한 생생한 기록물이다.
세간과 출세간의 존경을 동시에 받았던 스님의 회고록은 18세까지의 어린 시절, 1949년 21세에 출가해서 운허 스님의 제자로 경전을 공부하던 시절, 10여 년간 공부를 마치고 1957년 운허 스님을 이어 통도사 강사로 학인들을 교육하던 시절은 물론,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되고 은사인 운허 스님을 도와 최연소 역경사로 한글대장경 역경 작업에 착수해 2001년 완간하기까지 자신과 주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엮었다.
그런가 하면 6, 25 전쟁 중 전소된 봉선사 복원에 얽힌 사연, 한국불교 근대교육과 관련한 홍월초 스님, 월초 스님 손제자 운허와 태허의 독립운동, 이순재 스님의 항일 재판기록 등에 대한 생생한 기록까지 더해져 봉선사 스님들이 그 시대를 어떠한 마음으로 대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재가자 포교전략으로 세운 ‘삼화행도’ 이론을 비롯해 출가자 전문교육을 위한 홍법강원과 능엄학림의 운영과 함께 그곳에서 배출한 제자들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더불어 불경서당과 통신강원에 얽힌 이야기 등 교육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