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만든 견고한 세계를
아프게 버티고 있는 두 소녀의 생존기
전 국민이 숨죽이는 수능 날, 원인 모를 전염병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지닌 작품 〈붉은 마스크〉로 코로나 시기의 교육 현장을 아프게 후벼 파낸 설재인 작가. 그가 이번에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한국 교육은 어떤 모습인지 낱낱이 파헤치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딜리트』는 십 대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른들의 어긋난 기대가 어떻게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원외고와 서원정보고는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점이 많다. 외고에서는 명문대 진학률을 위해 학생들에게 엄청난 양의 학습을 강요하고, 정보고에서는 높은 취업률을 위해 학생들을 어느 기업에든 취직시키려 한다.
외고에 진학한 진솔은 쏟아지는 과제와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정보고에 진학한 해수는 무책임한 부모와 불확실한 진로에 흔들린다.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둘은 우연히 두 학교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사라진 이름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세밀하게 그려낸 이번 작품은 입시 전쟁, 대리 수행평가, 취업률 조작, 현장실습 사고 등 외부로는 잘 알려지지 않는 학교 내부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선보인다. 오늘날의 교육이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되묻는 것과 동시에, 독자들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 있는지 돌아보게끔 한다.
어른들의 압박 속에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두 소녀의 일상에 더해, 심상치 않은 지하 통로, 그곳에 잠들어 있는 이름들, 갑작스럽게 사라진 부모님 등 이야기 전반에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감돈다. 안개 속에 쌓인 길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결말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참고 견디기만 하던 아이들이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