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첫째마당 한글가온길, 한글세움길을 걷다
한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길 _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한글가온길
한글의 두 거인, 주시경과 헐버트 _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주시경마당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킨 가장 오래된 학회 _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한글학회
한글글자마당, 1만 1,172자의 과학 _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세종로공원
훈민정음 28자와 12척의 뜻을 아로새기다 _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둘째마당 훈민정음의 발자취를 찾아서
비밀 과업이었던 한글 창제의 공간들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과 창덕궁
훈민정음 반포의 산실, 집현전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수정전의 집현전
훈민정음 인재 양성소, 사가독서 전당 _서울시 은평구 진관사 한글길
훈민정음 창제 마무리와 보급을 위한 야외 연구소 _충청북도 보은군 초정행궁
훈민정음 희방사본을 찾아서 _경상북도 영주시 희방사
훈민정음을 만든 8인의 공로자들 _《훈민정음》 해례본 탄생부터 보존까지
훈민정음 정신을 드높인 《동국정운》 대표 집필자 _경기도 의정부시 신숙주 묘
훈민정음을 지킨 사람들 _해례본 발견자 이용준과 해례본 지킴이 전형필
셋째 마당 오직 하나의 글, 한글 유적지
한글의 아버지가 잠든 곳 _경기도 여주시 세종 영릉
세종대왕의 모든 것을 간직한 곳 _서울시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녑사업회와 세종대왕기념관
훈민정음 보급의 일등공신 신미대사 _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 복천암, 정이품송공원
한글 탄압의 주인공 연산군과 한글 지킴이 정의공주 _서울시 도봉구 연산군과 정의공주 묘
우리말 사전 탄생의 주인공 이극로 _경상남도 의령군 두곡마을
한글이 외면받던 시기에 세워진 한글 비석 유적지 _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포천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
미완성 한글 유적지 _서울시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근처 세종 생가, 전라남도 나주시 금안 한글마을, 세종시
넷째마당 천 년의 문자, 한글 기념관과 한글마당
훈민정음 천 년의 문자 계획 _서울
오직 하나의 큰 글, 한나라 글,
그 모든 영광과 아픔의 길!
1443년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 한글이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1446년 반포 이후 조선시대 내내 한글은 주류 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한자는 생명이고 신분 유지의 핵심 장치였으니 한글을 주류 문자로 인정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훈민정음》 해례본 저술에 참여한 8인(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쓰지 않았다. 또한 18, 19세기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조차 한글을 공적 문자로 인정하지 않았을뿐더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낡아빠진 사대주의와 한자 절대주의 결국 지식과 실용을 내세운 제국주의 침략의 먹잇감이 되었다.
한글은 ‘오직 하나의 큰 글’, ‘한나라 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910년 일제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일본어가 국어가 되는 현실을 맞이하자 ‘한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2023년로 한글 창제 580주년, 한글 반포 577주년을 맞이했다. 이 책은 재야의 한글학자로 한글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저자가 한글의 창제와 반포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글의 주요 발자취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정리한 것이다. 한글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 애쓴 이들, 한글을 홀대하고 탄압한 이들,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천년의 문자 한글 길에서 때로는 아픔을, 때로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책의 서두에서 먼저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오해를 밝히고 있다. 한글 창제는 세종의 단독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를 세종 단독으로 만들었을까!’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한글은 세종이 해례본 저술자 8인과 함께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한글 창제의 가장 확실한 기록인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세종이 단독으로 창제했음을 밝히는 기록이 분명히 나와 있다.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친히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