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가치가 이성에 있으며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신여성들은 이러한 이성적 사고와 자유사상에 힘입어 그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온 역사를 비판하며,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여성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나혜석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이성적 판단과 자유사상에 입각하여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중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녀는 식민지 시대 공적인 세계로 통하는 화가로서 예술의 길에 매진하며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했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어느 누구의 간섭이 들어오거나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자유로이 그리고 일관되게 여성의 억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평생을 여권 회복을 위해 죽을힘을 다했던 여성해방의 선구자였다.
--- pp.14~15
나혜석은 1910년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906년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사립 여학교인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설립자 엄준원에 들어갔다. 서울의 명문인 이 학교에서의 3년은 나혜석의 생애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왜 배워야 하는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습득할 것인가라는 교육의 원론적인 것에서부터 장차 여성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등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시기였다. 나혜석은 무엇보다 근대 학교를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의식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에 가장 큰 사실을 감안하면 그녀의 문제의식과 그 기반이 된 교육적 수혜 등은 더욱 돋보인다.
--- p.27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나혜석의 위상은 나름 독자성을 띤다. 도쿄 유학과 구미 여행이라는 나혜석의 경험은 조선 근대화의 동력으로서의 개인의 각성과 여성의 자각을 선도했다. 특히 서구의 문화를 습득하고 조선에 정착시키는 서구/조선의 조우 과정에서 나혜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