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김일엽은 최초의 여성 언론 주간이었으며 문인이었고 여성운동가였으며 나중에 승려가 되었다. 치열하게 현실에 맞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당당하게 실천해나간 선각자이자 문화인이었다. 많은 남성을 만나 자유로이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진아(眞我 찾기이자 완인(完人 즉 문화인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김일엽은 “이 몸과 혼 / 생명인 줄 그릇 알고 / 몸과 혼 사라질 제 / 몸부림쳐 우짖더라”(「몸과 혼(魂」고 간절히 목놓아 시를 읊은 바 있다. 김일엽은 인생문제의 해결을 위해 세속에서 열정을 쏟아부었으나 다 채워질 수 없음을 알고 마침내 스스로 불교 수행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김일엽은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을 벗어나 입적할 때까지 평생을 완인 즉 문화인이 되고자 고군분투했던 한국 여성사의 푯대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p.19
『신여자』는 전부 4권에 총 분량 약 260쪽 정도에 그친 단명한 잡지이지만 『신여자』를 통한 김일엽의 남다른 진취적인 의식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신여성’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그 잡지를 통해서였다고 할 만큼 한국에서 신여성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은 『신여자』 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의식 개혁을 부르짖는 것으로 평가되는 『신여자』는 겉으로 표방한 급진적 여성주의와는 달리 여성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점진적인 해방을 주장하는 온건한 양상을 보인 편이다. 그 원인을 김일엽이 남편의 경제적 원조 아래서 잡지를 운영한 것에서 찾기도 하며, 『신여자』의 온건한 입장은 신여성이 주축을 이루는 잡지는 급진적인 논설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 p.46
그녀는 열반에 듦으로써 세상적 인연으로 인한 괴롭고 쓰라린 모든 과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새롭고 고요한 세계로 평안히 들어갈 수 있었다고 본다. “일생에 다시 오지 않는” 열반에 의해 비로소 김일엽은 그토록 염원하던, 완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