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_ ‘밀폐 보존 용기’와 ‘통조림’, ‘철근 콘크리트’, 해저케이블 절연물 재료 ‘구타페르카’, ‘공기를 넣은 고무 타이어’, 인조 견직물 ‘레이온’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문명을 이룩한 물질과 재료의 중심에는 ‘화학’이 있었다!
1 HISTORY OF CHEMISTRY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로
† 1804년
식품 보존 기술 발명 ─ 식품 살균과 보존을 위해 지혜를 짜내온 인류
세균·곰팡이를 공격해 파괴함으로써 생물을 보호하는 물질, 포름알데히드 | 밀폐 보존 용기를 발명하여 세계 요리사와 전쟁사를 바꾼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 | 식품 장기 보존이라는 수천 년의 인류 과제를 ‘통조림’이라는 혁신적인 기술로 완성한 영국 발명가 피터 듀란드
† 1806년
알칼리 제조의 희비극 ─ 배신당한 발명
영국의 해상 봉쇄로 심각한 알칼리 부족 사태에 직면한 프랑스 | 혁신적인 탄산나트륨 제조법을 발명했으나 돈도 명예도 잃고 권총 자살한 의사 출신 화학자 르블랑 | 프랑스가 외면한 르블랑 공정을 이용해 화학 공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앞당긴 영국
† 1808년
근대 원자설 ─ 돌턴이 근대 원자설을 주창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탄생한 원자라는 단어를 근대에 부활시킨 영국 과학자 돌턴 | 돌턴의 원소기호는 베르셀리우스의 원소기호와 달리 왜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까?
† 1809년
농업을 화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 자본주의적 근대 농법의 시작
농경지를 사 등분하여 돌려짓기하는 ‘노퍽 농법’으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다 | 농업에 경제학을 융합시켜 근대화를 지향한 독일 농학자 알브레히트 테어
† 1811년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던 분자설 ─ 재발견되기까지 50년 동안 무시당한 천재
돌턴의 원자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화학 반응이란? | 50년 동안 화학계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아보가드로의 분자설
† 1812년
나폴레옹군의 패배 ─ 감염병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무적의 프랑스군
‘전쟁의 신’ 나폴레옹도 거꾸러
▣ 프랑스 정원사 조제프 모니에가 철근과 콘크리트의 장점을 결합해 만든
최강 건축 재료 ‘철근 콘크리트’가 세계 건축사를 바꾸다
1867년, 화학 원리를 응용하여 ‘철근 콘크리트’를 개발하고 실용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무렵 건축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세계사를 바꾼 인물이 있다. 놀랍게도 그는 과학자도 공학자도 건축가도 아닌 정원사였다. 프랑스인 조제프 모니에가 바로 그다. 모니에는 어떻게 혁신 제품 ‘철근 콘크리트’를 개발했을까?
당시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화분은 주로 전통적인 도기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신소재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든 화분이 등장해 팔리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신제품에는 한두 가지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바로 ‘너무 무겁고 쉽게 깨진다’는 점이었다.
모니에는 콘크리트 화분의 결점을 보완할 방법을, 즉 화분의 두께를 줄여 가볍게 하면서 동시에 강도를 높일 방법을 모색했다.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목표였으니 그 과정이 녹록할 리가 없었다. 많은 궁리와 노력 끝에 그가 고안한 아이디어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결합시키는 방법, 즉 철망(철근에 콘크리트를 흘려 넣어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지닌 기본 속성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 기본 속성이란 뭘까? 콘크리트는 압축에 강한 반면 잡아당기는 힘에는 약하다. 반대로 철은 압축하면 쉽게 휘어져 버리지만 잡아당기는 힘에는 강하다. 이 두 가지 속성이 결합되어 탄생한 모니에의 ‘철근 콘크리트 화분’은 역시 예상대로 비교적 가벼우면서도 매우 단단했다. 조제프 모니에는 그것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해 큰 호평과 찬사를 받았으며 1867년 특허도 취득했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885년, 조제프 모니에가 개발한 ‘철근 콘크리트’가 날개를 달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된다. 독일 건축가 구스타프 아돌프 바이스가 모니에에게 200만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