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_한 끝
1장 무의식의 기원에서 정신을 보다
나의 경행법 | 신독과 경행 그리고 장소화 | 몸, 무의식 그리고 기계: 주체화의 다른 길들 | 자유, 혹은 금지禁止의 형식이 개창한 것 | 자유의 비밀 | ‘마침내果’ | 선繕이다 | 알면서 모른 체하기 1: 동시긍정의 길 | 무의식의 기원에서 정신을 보다 | 하카라이가 없애려는 게 곧 하카라이이므로 | 시인들 |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 동중정의 지혜 |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면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 성聖은 성좌처럼 비현실적 가상으로서 길을 밝힐 뿐이며 | 끝은 겉에 있는 것 | 심원시망 지심여환心元是妄 知心如幻 | 운명에 관한 다섯 가지 상식 | 모든 해석은 실패한다 | 깨침이란 무엇인가 1 | 깨침이란 무엇인가 2 | 개입과 불이 1 | 개입과 불이 2 | 툇마루에 앉아 물레를 생각한다 |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지 않는 것 | 의욕이 하아얗게 되는 자리 | 허실인정虛室仁庭 | 권태로운 일에도 평심을 지키며 | 시작이다 | 낙타의 혹을 뗄 수 있느냐 | 오늘 아침도 인간만이 절망이지만 | 알면서 모른 체하기 2: 기파其派 | 알면서 모른 체하기 3: 마하리쉬의 경우 | 알면서 모른 체하기 4: 비인칭非人稱의 세계 | 임사 체험과 유체이탈 체험 | 절대지의 단상 | 여든하나 | 겨끔내기의 원리
2장 미립과 징조, 혹은 ‘알면서 모른 체하기’
내가 내 그림자를 없앤 채로는 빛을 볼 수 없다는 것 | 목검은 어떻게 넘어지느냐 |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예지몽의 경우 1 | ‘지진이 끝났다’고, 지진이 ‘말’했다 | 꿈을 만들 듯이 현실을 만들 수 있는가 | 유사한 사례들, 일곱 | 박정희가 죽는다 | 관심은, 앎은, 어떻게 전해지는 것일까 | 젊은 네가 죽었다, 혹은 ‘전형성’이라는 개입의 흔적 | 개꿈의 구조 | 우연의 한계 | 애매한 텍스트들 | 여담 하나, ‘나도 알고 있어요. 엄마 배 속에서 다 들었어요!’ | 몸은 섣부른 말을 싫어한다
3장 너는 그 누구의 꿈
책 속에서
해석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일’을 묻고 살피는 인문학은 응당 해석의 전문성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해석은 반드시 실패한다. 해석은 인간의 개입을 전제하며, 그 개입의 갈래와 정도는 영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우독愚毒은 여기에서 기원하므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부터 그 병폐가 심한 곳이 점복이며 꿈이고 시다. 또한 종교와 철학이며, 특히나 예술 일반에 대한 비평의 글쓰기다. 공부하는 이라면 점을 멀리할 것이고, 꿈 해석을 일삼지 말며, 무릇 희미한 대상을 놓고 해석하는 일에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 pp.50~51
‘깨친다’는 것은 우선 사무친다는 뜻이다. 사무친다는 것은 깊이 스며든다는 것인데, 이것의 함의는 다만 ‘심적 표상의 재설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식론적 차원의 안팎을 오가는 표상들은 대개 ‘사무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무슨 새로운 인식의 획득에만 기대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싯다르타의 깨침이 ‘12 연기설緣起說’의 인식에 있다고 말하는 짓은 안이하다. 그것의 요체가 인식일 뿐이라면 잠시의 대화나 독서를 통한 표상의 조작만으로 부처(들이 쉼 없이 생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인문학적 성숙이나 종교적 각성은 내용중심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총체적인 개입, 그 수행성遂行性에 묘처가 있는 것이다.
--- p.54
어리석음이란 곧 자신의 그림자를, 심지어 그 생활양식에 수반되는 각종 ‘쓰레기’를 감득하지도 자인하지도 못하(않는 ‘옮기지 못함不移’의 상태를 가리킨다.
--- p.80
그러나 차라리 괜찮은 답안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은 모른다’는 기본에 머무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일 테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알면서 모른 체하기’라는 내 개념의 기본 역시, 아직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분명히 설명할 수 없지만, 충분히 토의할 가치가 있는 현상이며, 그러므로 경험을 축적하고 식견을 조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