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징비록
류성룡이 직접 쓴 서문
징비록 1권
1장 전란 전 일본과의 관계
2장 우리의 국방 태세와 이순신의 기용
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緖戰의 붕괴
4장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5장 평양성 전투
6장 이순신과 조선 수군
7장 민중의 봉기, 의병
징비록 2권
8장 평양 수복
9장 전선의 교착
10장 진주성
11장 정유재란 발발
12장 이순신의 투옥과 수군의 전멸
13장 이순신 복귀
14장 마지막 전쟁, 노량
15장 구국의 영웅, 이순신
녹후잡기
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
1592년 4월 13일, 18만의 일본 대군이 부산 동래로 들이닥치면서 임진왜란 7년의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순식간에 한양까지 진군했고, 선조는 전란을 수습하고 백성을 보호하기보다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백성들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몰래 도망쳤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경복궁을 불태웠고, 의주까지 도망친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류성룡은 ‘조선 땅을 벗어나는 순간, 조선은 더 이상 우리의 땅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라고 통탄하면서 무능하고 질투심 많은 군주를 대신하여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힘썼다.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을 역임했던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경계, 충고를 담아 《징비록》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징비록》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등 참혹한 전쟁과 침략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위태로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징비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